[문화] '명랑운동회' 국민 MC에서 정치인으로…변웅전 전 의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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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웅전 전 아나운서가 23일 밤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중앙포토

“굳센 체력, 슬기로운 마음, 명랑운동회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늦잠을 깨워주던 경쾌한 목소리의 주인공, 1970∼1980년대 인기 프로그램 ‘명랑운동회’의 진행자이자 정치인으로도 활동한 변웅전 전 의원이 별세했다. 85세.

24일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3일 밤 서울 광진구 자양동 혜민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명숙 씨, 아들 변지명·지석 씨가 있다.

1940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산농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3년 KBS(당시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입사 초기에는 고참들의 지도를 받으며 야간 뉴스 진행을 맡았다. 그러나 최평웅 전 아나운서의 회고록 『마이크 뒤에 숨겨둔 이야기들(2023)』에 따르면, 고인은 젊은 시절 ‘자정 대공뉴스’ 진행 후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복귀해 새벽 2시 뉴스를 진행하다 방송사고를 내 장기범(1927∼1988) 당시 방송과장으로부터 지방 발령을 받았다.

이 사건은 한때 그의 큰 시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지방 발령으로 전국을 돌며 다양한 공개방송과 좌담 프로그램을 맡아 실전을 쌓았다. 고인은 인터뷰에서 “그 경험이 제 능력을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약 1년 뒤 서울로 복귀했을 때 그는 이미 대형 프로그램을 소화할 만한 진행력을 갖춘 아나운서가 돼 있었고, 1969년 MBC로 스카우트됐다.

이후 당시 최고의 예능 PD였던 김경태(1935∼1995)에 발탁돼 MBC 인기 프로그램 ‘유쾌한 청백전’, ‘묘기대행진’, ‘명랑운동회’ 등을 진행했다. ‘명랑운동회’는 코미디언 등 유명인들이 출연해 철봉에 매달려 풍선 터트리기, 손 안 대고 떡 먹기, 장애물 달리기 등 각종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인은 “전국 MBC를 돌며 녹화를 했다. 강렬한 사랑을 받았던 때”라고 지난해 한국아나운서클럽 인터뷰에서 이 시절을 회상했다. 또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실제로 재미있는 상황들이 많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게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잘 전달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은 ‘유쾌한 청백전’을 통해 보조MC로 고향 후배 이상용(1944~2025)을 발굴하기도 했다. 이상용은 과거 중앙일보에 “변웅전 선배가 미국에서는 말로 웃기는 스탠딩 코미디가 인기라며 적극 권했다”고 회상했다.

2011년에는 MBC에서 50년간 가장 존경받는 아나운서이자, 아나운서실을 빛낸 선배에게 주어지는 헌정패를 받았다. 고인은 당시 소감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말이 느린 충청남도, 그 중에서도 가장 느리다는 서산·태안에서 초·중·고를 나온 처지에서 각고의 노력, 눈물겨운 노력이 없었다면 절대 아나운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목숨을 건 비장한 각오로 임하니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외삼촌이 준 녹음기에 원고를 반복해 녹음하며 아나운서를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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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시절 고인 모습. 중앙포토.

정치 쪽으로는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을 맡으며 발을 들였다. 정계에 입문한 후론 15대 총선을 시작으로 16, 18대 서산·태안 지역구에서 3선 의원이 됐다. 18대 국회에선 보건복지가족위원장을 맡았다. 그의 뛰어난 언변은 정치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는데, ‘DJP연합’(김대중-김종필)이라는 정치적 용어를 만들어냈다. 국회의원 재임 시절이던 2008년에는 유재석·나경은 부부의 결혼식 주례로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의 마지막 정치 행보인 2011년 자유선진당 대표로 선출됐을 땐 “야당다운 야당을 하겠다. 작은 만큼 매운 정당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후에 고인은 인터뷰에서 “아나운서와 정치가 두 직업 모두 말로 하는 직업이니, 정직한 사람은 통할 것이란 생각이었다. 나는 정치계에 나가서도 ‘아나운서는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라고 유세했다”고 전했다. 후배 정치인들에게는 “상대 당을 칭찬하는 풍토를 만들면 좋겠다. 여·야가 서로를 비판하면서도 칭찬할 것은 칭찬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조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다. 장지는 판교 자하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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