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마약 든 줄 알았던 상자 속엔 장난감뿐…유죄일까, 무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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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xxxxxxxxxxxxxxxxxxx
마약이 든 줄 알고 갖고 있던 상자 내용물이 실제로는 장난감뿐이었다면 유죄일까, 무죄일까.
A씨(32)는 텔레그램 구인·구직 채널을 통해 마약류 판매상에게 마약 배달책(일명 ‘드라퍼’)로 고용됐다. 그는 2024년 7월 31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모처에서 “다른 배달책이 마약이 든 국제우편물 상자를 두고 가면 기다렸다가 수거하라”는 상선 지시에 따라 상자를 수거했다.
그러나 상자 내용물은 장난감뿐이었다. 인천공항세관에서 이미 장난감 안에 숨겨져 있던 마약류를 적발해 압수한 뒤였기 때문이다. A씨는 마약거래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와 별개로 경기도 평택시에서 2500만원 상당의 엑스터시(MDMA)를 수거한 혐의(특정범죄가중법상 향정)도 받았다.
A씨는 자신이 실제로 수거한 건 장난감뿐이므로 유죄를 받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두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마약거래방지법 9조 2항에서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을 마약류로 인식하고 양도·양수하거나 소지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게 근거가 됐다.
法 “어떤 물건이더라도 마약으로 알고 소지했다면 위법”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김성룡 기자
법원은 A씨의 행위가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을 마약류로 ‘인식’하고 소지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우편물 상자 안에 마약류가 들어 있다고 인식하면서 우편물 상자를 수거했다”며 “A씨가 자신의 집에 와서 상자를 개봉하고 장난감을 해체하는 과정에서도 마약류 거래와 관련된다는 점을 인식했을 것”이라고 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마약거래방지법의 취지는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이 결과적으로는 마약류가 아니더라도 대상의 착오로 인해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경우까지 처벌하는 것”이라며 “A씨가 장난감 안에 마약류가 들었다고 인식하고 이를 소지한 이상, 마약거래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타당하다”고 했다. 법원은 “‘그 밖의 물품’이란 약물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내용물을 마약류로 인식할 수 있는 물품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봤다.
A씨는 상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인 줄 알고 소지한 물건이 실제로는 마약이 아닌 경우에 대한 첫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마약류 범죄를 범할 목적으로 상자 내부에 마약류가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이를 소지했으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조항을 위반한 행위로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법 조항은 마약류 인식의 대상을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이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그 물품의 형상, 성질 등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며 “어떤 물품이라도 마약류로 인식됐다면 이 사건 조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은밀하게 이뤄지는 마약류 범죄의 특성상 일반적으로 마약류는 상자 등의 내부에 든 상태로 유통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에도 마약류 자체만 유통되는 경우와 비교해 그 행위의 위험성 및 처벌의 필요성 등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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