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수익률 올려 기금 고갈 늦춘다더니, 국민 노후자금을 환율 방어에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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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뉴스1
정부가 국민연금을 환율 방어에 투입하기로 하면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과정에서 외환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한 4자 협의체를 구성해 24일 1차 회의를 열었다. 보건복지부는 "협의체에서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25일 "전날 회의에서 세부 방안을 논의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환율 안정을 꾀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의체는 수시로 회의를 열기로 했다.
정부는 "환율 방어에 국민연금을 동원한다"는 지적에 매우 민감하게 반영한다. 동원이 아니라 조화 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전문가 평가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연금 전문가 A씨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환율 방어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면 기금에 손실이 생길 수 있는데, 그게 연금기금 운용의 기본 목적이 아니지 않으냐"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3월 국민연금 개혁에서 기금 소진 시기를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늦췄다. 여기에 더해 기금 운용수익률을 4.5%에서 5.5%로 높이면 2071년으로 늦춰진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을 활용해 환율 안정에 쓰다가 손실이 생기면 수익률에도 악영향이 초래될 수 있다는 뜻이다.
A는 "1994~2005년 기획재정부가 국민연금기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의무적으로 예탁하도록 했고, 이자를 낮게 적용해 국민연금에 손실을 끼친 적이 있다"며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당시 시민단체 등에서는 국민연금 손실이 3조원 넘는다고 주장했고, 기재부는 합리적 이자를 적용했다고 반박했었다.
2004년 고(故)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가 경기 부양을 위해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기재부는 그 후에도 국민연금에 주도권을 쥐려고 했고, 보건복지부는 방어에 힘을 쏟았다. 기재부는 기금운용본부를 총리실 산하에 두자고 했고, 반대 측에서는 아예 독립기구로 만들자고 맞서기도 했다. 복지부 내에서도 국민연금을 노인주택이나 요양원 등의 복지 투자에 쓰자는 안이 나왔다가 없던 일이 됐다.
A씨는 "현재의 환율 시장을 심리적으로 안심시키려는 목적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기본 원칙 훼손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설사 그리한다해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환율 상승이 원화 통화량 과잉 등의 구조적 문제가 원인인데, 국민연금을 동원해서 환율을 낮추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면 국민연금을 동원해도 되겠지만"이라고 말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이렇게 공개적으로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며 "복지부가 저항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위원은 "과도한 국가부채, 개인들의 외국 주식 투자 증가 등의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환율이 오르는 것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갖다 쓰려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차원에서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환헤지를 하는 것은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환헤지를 하되 부수적으로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처럼 환율 변동이 심해 국내 경제에 악영향이 커지면 국민연금도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환율 안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다만 "환율에 문제가 있다고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을 자동으로 파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연금은 외화자산의 5% 범위에서 자체 판단으로 전술적 환헤지를 실시할 수 있다. 올해 중순까지 2% 안팎에서 환헤지를 하다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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