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홈플러스 사라" 정치권, 농협에 압박…매각 발목 잡는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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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홈플러스 매장 전경. 뉴스1

홈플러스의 기업 회생절차가 안갯속에 놓였다. 26일 마감된 홈플러스 인수 본입찰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으면서다. 최악의 경우 청산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지역 상권과 일자리 문제를 감안해 농협중앙회가 홈플러스를 인수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지만,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물 건너간 매각

서울회생법원은 이날 “홈플러스 공개 매각 관련 본입찰 마감 시점 기준으로 입찰서를 제출한 업체가 없음을 확인했다”며 “자체 회생계획안 마련, 또는 2차 인수 절차 진행 여부 등 향후 회생 절차에 대해 논의 후 결정하겠다”이라고 말했다. 예비 입찰에 참여했던 하렉스인포텍과 스노마드도 끝내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회생계획안 제출일(12월 29일) 전에 적합한 인수자가 나타나면 매각 절차 연장, 회생계획서 제출 기한 연장이 가능할 거다. 그때까지 입찰제안서를 계속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현실적인 회생방안은 인수합병(M&A)”이라며 “M&A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매각 발목 잡는 세 가지

홈플러스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몸값은 비싼데 유통 산업 전망은 밝지 않고, 2만명에 이르는 고용 승계 문제도 인수자에겐 부담이다.

① 몸값은 비싼데: 불황이 길어지며 국내 유통업계에는 M&A 매물이 쌓였다. 팔고 싶은 기업은 많은데 사겠다는 기업은 없다. 게다가 대형마트 업계 2위인 홈플러스는 몸값이 너무 비싸다. 기업가치가 7조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는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보통주(2조5000억원) 투자자 권리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고, 홈플러스의 4조8000억원 규모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활용하면 인수자가 자금을 차입할 수 있다”며 실제 부담액을 1조원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② 빚 늘고 매출 줄고: 빚은 많은데 실적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운영자금차입을 포함해 금융 부채만 2조원에 이르고, 종부세·지방세 등 세금 920억원도 미납 상태다. 유통업계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며 대형마트 매출은 하락세다. 삼일PwC가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3조6816억원)가 계속기업가치(2조5059억원)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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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③ 고용 부담도: 인수 기업은 고용 승계에 대한 고민도 떠안아야 한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직접고용 인원은 2만 명, 간접고용 인원은 8만~9만 명이다. 이 때문에 노조 측은 정부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7일 홈플러스 노조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지역 상권과 10만여 명의 생계가 걸린 문제를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주도의 M&A로 구조조정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네가 사라, 홈플러스” 정치권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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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 농업협동조합중앙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받고 있다. 뉴스1

정치권이 꼽는 대안은 농협중앙회가 홈플러스를 인수하는 것이다. 지난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어기구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에게 ‘공익적 관점’에서 홈플러스 인수를 검토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농협유통과 하나로유통도 연간 각각 400억 적자로 인해 직원을 200명 이상 구조조정했다”며 “인수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농협이 홈플러스를 인수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농가 보호와 물가 안정을 목적으로 농산물을 매입하는 농협·하나로마트의 구조는 대형마트의 상품 조달 과정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NH농협지부는 “홈플러스 인수로 인한 규모의 경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다”며 “대형 인수합병보다 농협 유통사업 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여론의 지지를 받은 정치권의 움직임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리얼미터가 18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8.8%가 홈플러스 인수 적합 기업으로 농축협 유통기업을 꼽았다.

“매각하려면 자산 효율화 먼저”

전문가들은 홈플러스 M&A가 순탄하게 진행되려면 점포 효율화, 시설 개선 등 구체적인 자구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치권의 도움을 기대하기보다 MBK파트너스와 노조 모두 점포 슬림화, 조직 정비 등에 좀 더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홈플러스가 매물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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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유통 환경 개선을 위해 규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라인 중심의 소비 구조에서 현행 유통산업발전법 등 규제는 지역 소상공인을 보호하기에도 한계가 있다”며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유통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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