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고속도로 터널공사·하수도 누수로 지반 약화”…명일동 땅 꺼짐 '예고된 인재&#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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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땅 꺼짐’ 사고는 지반이 약한 토질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도심지에서 지하 터널 공사가 연이어 진행되며 사고를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도 서울에서 10m 이상 땅을 파는 공사 현장이 150곳 이상인 상황에서 실태 점검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3일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의 명일동 땅 꺼짐 사고 조사결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서 지름 22m·깊이 16m의 대형 땅 꺼짐 사고가 발생해 3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지고, 승용차 운전자 1명이 부상을 입었다. 왕복 6차선 도로 중 4개 차로에 달할 정도로 도로가 함몰돼 큰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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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4일 강동구 대명초등학교 도로에서 전날 발생한 대형 땅꺼짐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사조위는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설계·시공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한 지반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꼽았다. 여기에 “과거 세종-포천 고속도로 13공구 터널 공사로 지하수위가 내려가 지반이 연약해졌고, 현장 인근의 노후 하수관도 관리 미흡으로 장기간 누수가 이뤄져 땅 꺼짐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박인준(한서대 토목공학과 교수) 사조위원장은 “현장 조사와 드론 촬영 분석 결과, 땅 꺼짐이 발생한 지반에서 3개의 불연속면을 발견했다”며 “지반이 서로 어긋나면서 형성된 대규모의 쐐기형(역삼각형 모양) 토체(많은 양의 토양)가 지하수위 저하와 하수관 누수로 미끄러지듯 쌓였고, 그 결과 설계 하중을 초과하는 외력으로 작용해 터널 붕괴와 땅 꺼짐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땅 꺼짐이 발생한 도로는 지하철 9호선 연장 사업 1공구 건설 현장 위쪽으로, 사고 당시 지하에서는 터널 굴착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사조위는 다만 이에 앞서 세종-포천 고속도로 터널 공사 탓에 지하수위가 크게 내려간 점을 땅 꺼짐 사고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고속도로 터널 공사 과정에서 지하수위가 최대 26m까지 급격히 낮아졌다”며 “이로 인해 전체 지반이 약해지고 땅 꺼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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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2017년 1월 세종-포천 고속도로 13공구 터널 공사 당시 지하수위는 지표면으로부터 3.1∼6.9m 수준이었지만, 2022년 1월 지하철 9호선 4단계 터널 공사 때는 지하수위가 18.9∼25.5m까지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조위에 따르면 통상 도로 3m 아래 지하수가 흐르고, 이는 토양의 응집력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터널공사를 하게 되면 배수(排水)공법을 통해 물을 빼내게 돼 지반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현장 인근의 노후 하수관에서 장기간 누수가 발생한 점도 지반 약화에 한 몫 했다. 2022년 하수관 실태 조사가 이뤄졌지만, 당시 균열·이음부 단차 등에 대한 보수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사조위는 시공 과정에서 시공사(대우건설)의 시방서 작성 미흡 등을 적발했다.

박 위원장은 “선진국에선 도심지 터널 공사 시 배수 공법을 쓰지 않는다”며 “구조적으로 지반이 취약한 게 발견돼 자연 재해 측면도 있지만, 한계가 뚜렷한 공법으로 터널 공사를 한 점에선 ‘인재’”라고 지적했다. 사조위에 따르면 공사비 등 비용 문제로 국내에선 비(非)배수 터널공사가 아닌 배수 터널공사를 대부분 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비배수 공사가 배수 공사에 비해 공사비가 2∼3배 많이 들기 때문이다.

사조위는 재발 방지 대책으로 ▶지반조사 및 지반탐사를 강화하고 ▶지하수위 관리 기준 강화 ▶도심지의 지반 약화 구간에선 비배수 터널 시공 ▶굴착공사 인근 노후 하수관 교체 등을 제시했다.

사고의 책임 소재는 추후 가려질 전망이다. 김태병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사조위 최종 보고서를 한 달 뒤 서울시에 통보하고, 이를 토대로 수사기관이 발주청과 시공사 등의 고의 및 과실 수준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서울 곳곳에서 굴착 공사가 진행 중인 만큼 지반 실태 점검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깊이 10m 이상 지하 굴착 공사를 진행 중인 서울 시내 공사 현장은 총 153곳이다. 서초구 25곳, 강남구 20곳, 성동구 12곳 순으로 많다. 또 이를 제외하고 향후 5년간 예상되는 굴착 깊이 10m 이상 공사장도 261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 정책관은 “땅 꺼짐이 유발될 수 있는 불연속면이 토양층에서 발견된 게 이번이 처음이고, 서울 대부분이 명일동 같은 풍화토(암반층이 오랜 풍화로 약해진 토양)”라며 “굴착 공사 현장마다 지반 조사를 통해 취약 여부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강동구가 한강변이고 지질학적으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돈이 들더라도 지질조사를 제대로 했어야 했다. 설령 몰랐더라고 공사를 하면서 주의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사조위는 이번 사고는 ‘싱크홀’(Sink hole)이 아닌 땅 꺼짐(지반 침하)라고 지칭했다. 싱크홀은 석회석 지형의 지반이 내려앉아 생긴 커다란 웅덩이로 통상 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일 때 사용하는 용어다. 그 외 지하수위 저하나 노후 배수관 등 인위적인 이유로 땅이 함몰되는 현상은 땅 꺼짐 또는 지반 침하로 지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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