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민주당 '필리버스터 무력화법' 강행…野 "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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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아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종료일인 9일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은 물론 조국혁신당도 반대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 등 쟁점 법안 처리를 예고하면서 여의도에 전운이 드리우고 있다. 민주당은 10일 시작되는 12월 임시국회도 이미 소집한 만큼 연내에 쟁점 법안을 모두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166석)을 점유한 탓에 쟁점 법안에 대한 물리적 저지가 불가능한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민주당도 필리버스터 요건을 엄격하게 하는 법 개정을 속전속결로 추진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법안 통과 요건(150석 이상)을 충족하는 166석 민주당이 소수당의 합법적 의사 지연 제도까지 무력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필리버스터 무력화법’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 3일 국회 운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단 6시간30분 만에 고속으로 통과해 본회의에 올랐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국회법 개정안은 무제한 토론 중 회의장에 있는 의원 수가 재적 의원 5분의 1(300명 중 60명)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이를 중단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소수 의견을 지키는 필리버스터가 국회를 멈춰 세우고 협상 우위를 위한 정치 기술로 악용되고 있다”며 “국회 마비, 국민 피로, 기자 과로의 필리버스터를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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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필리버스터는 1973년 폐지 이후 2012년 ‘국회 선진화법’과 함께 다시 부활했다. ‘동물 국회’라는 오명을 벗고 말로 하는 정치를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재도입된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무제한 토론’ 의미 그대로 제한을 두지 않고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이나, 국회는 효율을 위해 24시간이 지나면 강제 종료할 수 있는 근거를 뒀다. 그러면서도 재적 5분의 3(180명) 이상 찬성이라는 다소 엄격한 요건을 붙였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 기회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국회 관계자)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렇게 도입한 필리버스터를 정족수 요건까지 더하며 손보려 하자 야당은 “소수당 최후의 저항 수단마저 빼앗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송 원내대표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 “필리버스터는 의회 다수당 독재에 대한 마지막 견제 장치”라며 “모든 법을 아무런 견제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시키겠다는 것은 ‘일당 독재 고속도로’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나마 107석 국민의힘은 개정안이 요구하는 60석 이상 재석을 충족할 수 있지만, 조국혁신당(12석)·진보당(4석)·개혁신당(3석)이 요건을 충족하려면 다른 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필리버스터는 어떤 법안이나 정책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당시 문제점을 판례와 같이 역사에 기록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60명이든, 10명이든, 300명이든 ‘재적’이라는 기준을 두는 건 필리버스터를 만든 목적을 호도하는 다분히 정략적이고 기술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 브리핑에서 “필리버스터 기회 자체를 제한한 적이 없다”며 “5분의 1을 충족 못하는 소수당의 기회 보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추후 보완할 문제”라고 했다. 민주당 원내 핵심관계자는 “국회법 73조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 개의 자체가 재적 의원 5분의 1 이상 출석이라 그 원칙을 준용한 것”이라며 “필리버스터 발동 요건이 재적 3분의1(100명) 이상이라 이보다 의원이 적은 정당은 애초에 발동조차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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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둘째)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제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안 자체에 취지가 상충하는 내용이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에는 무제한토론의 진행을 의장이 지정하는 의원이 할 수 있도록 내용을 담았다. 국회의장·국회부의장만 진행할 수 있던 현행 기준에서, 모든 의원이 사회권을 맡을 수 있게 열어준 것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회권 측면에서는 필리버스터를 용이하게 하고, 정족수 측면에서는 필리버스터를 제한해 목적이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국회 관계자는 사회권 조정 조항이 들어간 데에 “사회를 보는 의장의 체력 소모가 심하니 차기 의장 후보군 의원이 이 조항을 만드는 데에 상당히 개입했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필리버스터 제한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상원에 현행 필리버스터 종결 요건인 100석 중 60명을 공화당 의석인 53석으로 완화하는 ‘필리버스터 무력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인 공화당의 상원 의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이재묵 교수는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상황에서도 찬반 토론을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미국은 필리버스터를 200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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