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법정 스님의 맏상좌 덕조 스님 "불일암에서 15년, 비움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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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맏상좌인덕조 스님(길상사 주지)이 최근 에세이집 『무언화(無言花)』를 출간했다. 책의 부제는 ‘고요 속에 피어난 깨달음의 꽃’이다.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출판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덕조 스님은 “수행자가 책 낸다고 자랑할 것도 없는데, 그저 망상의 파편들”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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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입적 후에 15년간 불일암에 머물며 날마다 하루의 단상을 글로 :썼던 덕조 스님이 에세이집 '무언화'를 출간했다. 덕조 스님은 "망상의 파편들"이라며 웃었다. 백성호 기자

15년 전, 법정 스님은 열반하기 직전에 유언을 남겼다. 맏상좌인덕조를 향해 “제방 선원에서 10년간 정진하라”고 엄하게 당부했다.

당시 덕조 스님은 대원각을 보시받은 뒤, 12년간 길상사를 고급 요정에서 수행도량으로 탈바꿈시켰다. “초기에는 두세 시간 자본 적도 없었다. 길상사 살 때는 무조건 직진만 했다. 지칠 대로 지쳐있던 시기였다. 그때 은사 스님께서 저에게 시간을 주셨다.”

스승의 입적 후에 유언에 따라 덕조 스님은 순천 송광사 뒤 불일암으로 내려갔다. 법정 스님의 자취가 깃든 암자에서 그는 무려 15년간 살았다. “은사 스님(법정 스님)께서는 평소 뭘 하려면 10년은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10년이란 숫자는 그럼 개념이었다. 저도 꼭 10년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 살다 보니 15년이 됐다.”

법정 스님의 10년, 덕조 스님의 15년. 불일암에서 보낸 그 세월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성숙해지는 시간이었다. 불일암에서 처음 10년은 매일 하루의 단상을 글로 썼다. 특히 새벽예불 끝나고 이른 아침에 글을 많이 썼다. 인간은 새벽에 영혼이 가장 투명하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기록한 불일암의 깨달음들이 모여서 『무언화』가 됐다. 덕조 스님은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한 생각을 내려놓고,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보이는 현상과 생각들”이라고 했다.

“산에서는 명상이라면 명상, 자신을 관찰하고 자신을 짚어가며 살았다. 매 순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와서 사니까 이걸 놓치기가 쉽더라. 도시에서는 별이 떴는지, 달이 떴는지 못 느끼고 살지 않나. 오늘도 저녁이 되어서야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달이 눈에 들어왔다. 참 보기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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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은 "상좌를 받지 않겠다"는 공언을 깨트리면서까지 덕조 스님을 절집의 아들인 상좌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송광사에서도, 종단에서도 법정 스님의 상좌라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중앙포토

덕조 스님은 출가 전에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읽었다. 거기에 반해 송광사로 출가했고, 법정 스님의 맏상좌가 됐다. 절집의 큰아들이다. 법정 스님도 그랬다. “상좌를 절대 받지 않겠다”는 공언을 스스로 깨트리며, 덕조를 상좌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무언가를 버리기는 어렵지 않나. 은사 스님은 책이든 오디오든, 어느 순간이 되면 다 나누어 주었다. 그날 불일암을 찾아오는 사람이 누구든 모두 줘버렸다. 그렇게 비우고, 그렇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글과 행동이 둘이 아니구나란 생각을 했다.”

덕조 스님은 스승의 뜻을 좇아 길상사에서 ‘1박 2일 무소유 템플스테이’를 꾸리고 있다. 지난여름에 4회, 올겨울에 4회 진행한다. 지난번 템플스테이에선 20대가 50%를 넘었다. “1박 2일이라도 무소유를 체험해보자. 핸드폰도 내놓고, 시계도 내놓는다. 그리고 1박 2일간 묵언(默言ㆍ침묵을 지킴)을 한다.  정 필요할 때는 필담으로 해야 한다. 반응은 ‘대만족’이다 .”휴대폰을 내놓고 처음에 불안해하던 젊은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고요와 평안을 체험했다.

이해인 수녀는 추천의 글에서 “‘무언화’라는 제목 자체가 새로운 깊이와 고요함으로 다가옵니다. 스님의 책은 연잎 위에 앉은 빗방울처럼…깨달음을 고요히 피어오르게 합니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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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조 스님은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의 뜻을 좇아 '1박2일 무소유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길상사

간담회 말미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것 같은가?”는 물음이 나왔다. 덕조 스님은 “물질이 풍요롭다 보니 무소유가 더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라고 답했다.

불일암에서 보낸 시간이 비움의 시간, 감사의 시간이었다는 덕조 스님은 “말 없는 말로, 고요한 침묵으로, 감사의 꽃 한 송이를 올립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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