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국이 최후통첩 때 쓰던 이 말, 일본을 향해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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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베이징에서 왕이(오른쪽 두번째) 중국 외교부장이 요한 바데풀(왼쪽 두번째) 독일 외교부장과 회담을 마치고 걸어나오고 있다. 중국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중국이 이웃 나라들과 전쟁 직전에 ‘최후통첩’에 쓰던 외교 용어를 일본을 향해 꺼내들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에 중국이 항공모함 선단을 일본 해역 근처로 보내고 100여회에 달하는 함재기 이착륙 훈련을 하는 등 무력 시위를 하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 8일 베이징에서 열린 요한 바데풀 독일 외교부장과 회담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是可忍孰不可忍·시가인숙불가인)”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8일 오후 9시 41분 바데풀 장관과 회담을 소개한 뒤 3시간쯤 지난 9일 오전 0시 55분 “왕이: 대만의 지위는 이미 ‘7중으로 고정됐다’”는 제목의 별도의 자료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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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새벽 중국 외교부가 전날 열린 왕이 외교부장과 요한 바데풀 독일 외교부장의 회담 결과와 별도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을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최후통첩성 외교 용어를 포함했다. 중국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문제의 발언은 이 보도 자료에 마지막 문단에 들어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왕 부장은 “현직 지도자가 대만을 빌미로 문제를 일으켜 중국에 무력 위협을 가하려 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是可忍孰不可忍·시가인숙불가인)”는 직역하면 “이를 참는다면 뭘 못 참겠는가”라는 정도의 의미다. 원래는 공자의 논어 ‘팔일(八佾)’의 첫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노나라 실권자인 계손씨의 불손한 행동을 공자가 지탄하는 맥락에서 사용된 이 구절을 중국 당국은 현대 외교에서 결정적 시점마다 꺼내들었다. 과거 1962년 9월 22일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是可忍, 孰不可忍)”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기사는 “인도 당국에 엄숙히 경고한다. 우리가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시오(勿謂言之不預也·물위언지불예야)”라고 했다.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0월 20일 중국은 인도와 국경 전쟁에 돌입했다.

중국·베트남 국경 분쟁이 극에 달하던 1978년 12월 25일 인민일보는 “우리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우리가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미리 분명히 해 두자”는 문장이 포함됐다. 이듬해 2월 17일 중국·베트남 전쟁 발발 당일 인민일보에는 1면에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제목을 달았다. 중국이 전쟁을 앞두고 ‘최후통첩’ 때마다 꺼낸 구절이란 얘기다.

중국이 일본과 외교 분쟁에서 최후통첩성 발언을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센카쿠(尖閣·중국명 釣魚島·댜오위다오) 열도 영유권을 두고 중·일 갈등이 가장 최고조로 올라갔을 때인 지난 2012년 9월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낭떠러지에 이르렀으니 말고삐를 돌려라(懸崖勒馬·현애륵마)”라는 정도로 그쳤다. 현애륵마는 최후통첩 전 단계에 구사하는 중국식 외교 용어다.

다만 무력 시위를 넘어 실제 군사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만 연합보는 “왕 부장의 발언이 정말로 최후통첩이 되려면 인민일보 1면이나 사설로 게재돼야 한다”면서도 “외부에서는 가볍게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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