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연합뉴스.

이달 들어 일본 국채 가격과 엔화가치가 동시에 추락했다. 일본 통화정책은 긴축으로, 재정은 확대로 방향이 엇갈리면서다. 정책 엇박자의 불똥이 한국의 원화와 채권시장으로 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2% 선에 바짝 다가섰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달 9일 장중 연 1.981%까지 올랐다. 고가 기준으로 2007년 6월 18일(연 1.99%) 이후 18년여 만에 가장 높았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채권값은 하락한다. 10년물뿐 아니라 장기 국채값은 줄줄이 수직 낙하하고 있다. 20년물 국채 금리는 9일 한때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연 2.96%를 기록했다. 30년물 금리는 이달 들어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 중이다.

파장이 커지자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9일 “장기 금리 상승 속도가 약간 빠르다"며 "필요하면 국채를 신속하게 매입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10일 오후 4시 기준 전날 종가보다 0.005%포인트 소폭 하락하는 데 그치며 연 1.955%에서 거래되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달 BOJ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국채 금리를 끌어올렸지만, 금리 인상기에 동반되는 엔화 강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엔화값은 10일 오후 4시 미국 달러당 156.67엔으로 이달 초(미국 달러당 155.48엔)보다 1.19엔 하락(환율은 상승)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엇갈린 영향이 크다. 최근 파생상품 시장에선 이달 19일 BOJ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확률을 90%로 예측한다. BOJ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따른 물가 하락) 탈출을 확인하며 금리를 정상화(금리 인상)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다카이치 새 내각이 적극적으로 돈을 푸는 경기 부양책을 예고하면서 엔화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확대 재정은 국채 금리 상승 압박으로도 작용한다. 다카이치 정권은 11조7000억엔 규모(약 109조원)의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 부족한 예산을 충당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상당수 전문가가 일본 장기 국채값과 엔화가치가 동시에 하락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JP모건의 야마와키 타카후미 일본 채권 담당자는 “확대 재정이 지속한다면 투자자들은 채권 매수에 나서기 어렵다”며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10년물 국채 금리) 2%는 단지 통과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은행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MUFG)의 세키 히로유키 그룹장도 10일 로이터통신을 통해 ”BOJ가 금리를 올리고, 정부가 지출을 늘린다면 엔화 약세가 수입 비용을 자극해 다시 물가가 오르고 통화 가치가 더 하락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원화는 엔화 흐름에 동조화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정부가 원화값 하락 방어선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엔저 현상은 악재다. 일본 등 주요 국가의 재정 확대 기조도 채권 금리 오름세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후임으로 ‘친트럼프’ 성향인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유력한 분위기도 변수다. 월가에선 Fed 독립성 훼손 우려에 미국채 투매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엇박자 정책과 Fed 독립성 훼손 우려 등이 맞물리면서 당분간 국내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10일 서울 채권 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11%포인트 오른 연 3.095%에 장을 마쳤다. 원화값은 전날보다  미국 달러당 1.9원 소폭 오른(환율 하락) 1470.4원에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