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환율 탓 물가 뛰는데, 대책은 또 ‘물가 책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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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 대책 답습 논란

장기간 이어지는 원화 가치 하락(환율은 상승)으로 수입물가가 들썩이자 정부가 품목별로 담당 공무원을 정해 물가를 관리하는 ‘물가 책임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과거 이명박(MB) 정부 시절 ‘배추 국장’, ‘쌀 실장’을 등장시킨 ‘물가관리 책임실명제’처럼 단기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에 차관급 물가안정책임관을 두기 위해 대상 품목 등을 검토하고 있다. 각 부처 차관이 소관 품목의 수급과 가격 변동을 점검해 이를 직접 책임지고 관리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축산물과 가공식품을, 해양수산부가 수산물을, 산업통상부가 석유류 등의 품목을 각각 담당하게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가공식품 등 국민이 물가 상승을 크게 체감하는 품목을 집중해 관리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물가안정책임관을 꺼낸 건 최근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4% 오르며 10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올해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물가가 오르는 게 부담이다. 지난 11월 수입물가지수는 전달보다 2.6% 오르며 지난해 4월(3.8%)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통상 수입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정부가 이를 도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11월에도 각 부처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지정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에는 담당 공무원의 이름을 걸고 관리하는 ‘물가관리 책임실명제’까지 도입해 ‘배추 국장’ 등의 별칭을 낳기도 했다.

다만 물가관리 책임제의 약발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우선 물가 상승의 원인이 국내 요인이 아닌 원화값 하락 등 대외 복합 요인에 기인해서다. 국제유가는 하락세인데, 국내에선 이를 체감하기 어려운 게 대표적 예다.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1.08% 내린 배럴당 56.8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21년 2월 4일(56.23달러) 이후 4년 10개월 만에 가장 낮다. 올해 초(73.13달러)와 비교하면 22.3% 급락했다. 해외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내년 석유 공급 파동으로 WTI는 배럴당 연평균 53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수요가 위축되면서 공급 과잉 문제가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 협상 가능성도 유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국내는 상황이 다르다. 16일 기준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L당 1742.06원(한국석유공사)이었다. 올해 초(1672.68원)보다 4.1% 올랐다. 달러로 거래되는 수입 제품 특성상 원화가치가 낮으면 수입물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역설적으로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가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인위적인 가격 억제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 교수는 “과거 정부의 물가관리 책임제는 득보다 실이 더 큰 경우가 많았다”며 “기업 이익 감소로 경제 성장 동력이 약화하는 데다, 기업들이 눈치를 보다가 한 번에 가격을 많이 올리는 경우도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도 “외환시장 안정 등 근본적 처방이 없는 품목별 관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품목별 관리 외에도 물가 안정을 위해 할인 지원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등도 설탕·밀가루 등 가공식품 원재료에 대한 식품회사들의 담합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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