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매달 15만원 준다" 잔칫집 같던 농촌…인구 확 늘었는데 곡소리, 왜

본문

bt0ce0af498b0a2bec1185488d71eca02d.jpg

15일 충남 청양군 청양읍의 한 도로에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최종권 기자

‘도비 30%’ 갈등에 “청양 탈락이냐” 문의 쇄도

15일 오전 충남 청양군의 한 버스정류장. 군청으로 가는 도로와 교차로 곳곳에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선정 환영’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청양군은 내년 시행을 앞둔 농어촌기본소득 대상 지역 10곳 중 한 곳이다. 청양에 거주하는 주민은 연령·소득 등에 따른 조건 없이 매월 15만원(지역사랑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주민 구모(80)씨는 “한 달에 15만원도 시골에선 큰돈”이라며 “쓰레기 줍기(노인 일자리 사업)와 기초연금을 받아도 한 달 소득이 60만원이 채 안 된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난방비와 생필품 구매에 보태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소득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난 10월 시범 사업지 선정 이후 잔칫집 같던 청양군은 한때 불안한 기류가 흘렀다. 광역자치단체마다 다른 도비 보조율(10%·12%·18%·30%)을 정부가 국회 부대 의견을 근거로 일괄 30%로 상향하면서다. 내년도 청양군 기본소득 전체 사업비는 540여억 원이다. 충남도는 “도비 30%(165억원)는 지나치다”며 반대했다. 예산 분담 합의가 진척이 없자, 청양군은 지난 12일부터 하려던 기본소득 신청을 잠정 연기한 상태다. 청양군 관계자는 “최근 ‘사업이 무산된 것 아니냐’는 민원 전화가 급증했다”며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김태흠 충남지사는 이날 “이번에만 도비(30%)를 지원하겠다”면서도 “도비 30%를 강제한 것은 지방의 재정자율권을 침해한 적절치 않은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btbc953f89a79c3dbb17f100c3e14ae077.jpg

지난 5월 영농철을 맞아 충남 논산시 황산벌 들녘에서 농민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고구마 모종을 심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인구감소 지역에 도움” vs “정책효과 검증 안 돼”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농어촌 기본소득’이 다음 달 시행을 앞두고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시범대상지로 선정되고도 늘어난 도비(道費)를 놓고 예산 분담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공모 과정에서 지방비 분담은 ‘도(광역)와 군(기초)이 협의해 조정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정부가 도 부담분을 30%로 못 박으면서 생긴 결과다. 기본소득의 실효성에 대해선 “인구감소 지역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선심성 정책”이란 반응이 대립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 전북 순창·장수, 전남 신안·곡성, 경북 영양, 경남 남해, 충북 옥천 등 10곳에서 내년에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이 사업은 대상 지자체 실거주 주민들에게 월 15만 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을 2년간 지급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사업 선정 지역은 발표 전후로 전입 인구가 일제히 증가하는 모습이다.

전남 신안군 인구는 지난 9월 3만8883명에서 11월 4만1545명으로 두 달 새 2662명 늘었다. 같은 기간 경북 영양군은 608명, 강원 정선군은 1191명, 경남 남해군 1141명, 경기 연천군 951명, 충남 청양군은 717명이 늘었다. 청양군 관계자는 “귀농·귀촌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실제 청양에 거주하면서 다른 곳에 주소를 둔 분들이 전입 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옥천군 관계자는 “선정 이후 열흘 새 전입 인구가 600명이나 늘었다”고 했다.

bt097723a8dc421b81a890ca8bc64e40ca.jpg

김주원 기자

시범 사업지 일제히 인구 증가

이들 지자체는 주민과 협의체를 구성해 위장 전입자를 색출한다는 방침이다. 청양군은 마을별 실무협의회를 구성해 후보지 발표 이후 전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3개월간 현장 실사 등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고, 공과금 납부 등도 주기적으로 확인할 계획이다. 정선군은 임대차 계약서와 기숙사 확인증 등으로 1차 조사를 마친 뒤에도 90일간 추가적인 실거주 검사를 한다. 정선군 관계자는 “검증이 끝나면 3개월 치 기본소득을 한꺼번에 지급하고, 그 이후에는 매달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연수 보은발전포럼 대표는 “단기적인 현상일 순 있지만, 신규 유입자가 꾸준히 유지되면 지역 내 소비를 진작시켜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전망했다. 최승호 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방소멸기금이나 농촌균형발전 사업 등으로 농촌에 꽤 많은 투자가 이뤄졌지만, 대개 시설건립 등에 국한됐다”며 “주민에게 현금을 주면 지역에서 소비가 일어나면서 미용실이나 음식점 등 최소한의 편의시설이 유지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농촌 기본소득 예산을 놓고는 진통이 한창이다. 국비가 40% 고정됐지만, 지방비 분담률은 상당수 지자체가 이견을 보인다. 경남도는 남해군 기본소득 사업에 도비 증액이 어렵다는 의견이다. 남해군 기본소득 전체 예산은 702억원으로, 국비 280억8000만원(40%)과 매칭해 도비 126억3600만원(18%), 군비 294억8400만원(42%)으로 구성됐다. 남해군 관계자는 “선정된 10개 군 가운데 경기도 연천군 등 일부만 도비 30%를 확보했다”며 “확보된 군비로 일단 시범사업을 시행하는 게 정책 혼란을 막는 길”이라고 말했다.

bt0b33d267aa70d63e384ce09976a5d8a5.jpg

농어촌기본소득운동경남연합과 농어촌기본소득남해군추진연대가 지난 9일 경남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개회한 경남도의회 앞에서 상임위원회가 삭감한 남해군 농어촌 기본소득 도비 126억원 복원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괴산 50만원·보은 60만원…충북은 '수당 도미노' 현상 

경북도 역시 추가 증액에 난색을 보인다. 영양군 농촌기본소득 사업엔 도비 50억원(18%)과 군비 117억원(42%)을 편성됐다. 경북도 관계자는 “공모 때는 지역 여건에 따라 지방비 분담 비율이 조정 가능하다더니, 갑자기 30%로 도비를 올리라고 해서 당황스럽다”며 “내년 추경에 편성할지는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역을 거론할 수 없지만, 10곳 중 절반 정도만 도비 분담에 합의한 상태”라며 “이달 중으로 광역자치단체와 추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주민도 있다. 청양군 주민 이모(71)씨는 “여태껏 농촌에 큰돈을 풀었지만, 인구는 줄고, 상권은 계속 침체하고 있다”며 “기본소득은 선거를 앞둔 선심성 정책 같다. 일자리 늘리기와 주거·교육 환경 개선이 더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최호택 배재대 교수(행정학과)는 “지방비 비율이 높은 현재 기본소득 사업 구조로는 재정이 열악한 소멸지역의 고정 경비 지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꼭 필요한 복지나 사회간접자본 사업이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지역 인구가 늘었다는 건 주변 인구를 뺏어온 결과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1,68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