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성범죄자' 딱지도 못 가뒀다…엡스타인 망령에 떠는 美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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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엡스타인(사진 가운데). AP=연합뉴스
2019년 성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사망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이름이 2025년 현재까지도 미 정가를 휩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미 정계 거물의 이름이 엡스타인의 이름과 함께 오르내리는 상황 속 그의 죽음이 의혹을 종결시키기보단 확대시킨 영향이 크다.
지난 11월 미 상·하원이 가결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에 따라 미 법무부가 엡스타인 수사 관련 문서를 19일(현지시간) 1차적으로 공개했음에도 의혹은 여전하다. 미 법무부는 향후 수십만 건의 문서를 추가로 공개할 방침이나 19일 공개한 문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거의 등장하지 않자 ‘법무부가 의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관련 내용을 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엡스타인 사건 관련 피해자들은 “은폐가 계속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내년 11월 치러질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엡스타인이 미 정가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엡스타인 사건의 시작, 돈과 권력이 만든 면죄부

미 법무부가 19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 속 제프리 엡스타인(오른쪽)과 그의 연인 길레인 맥스웰. 맥스웰은 여러 성범죄를 조력한 혐의로 2020년 7월 체포됐다. 맥스웰은 2022년 6월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미국 법무부, AP연합뉴스
엡스타인은 본래 사립학교 교사였으나 1976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입사하며 금융계에 진출했다. 베어스턴스에서 승진 가도를 달리던 그는 1981년 독립해 10억 달러(약 1조481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 대상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그는 막대한 부를 축적해 뉴욕 맨해튼 저택, 개인 전용기 나아가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내 본인 소유 섬 등 호화 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가 됐다. 그가 쌓은 부는 그에게 정·재계 너른 인맥을 선물했다.
그렇게 성공한 금융인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05년 한 건의 신고로 숨겨진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2005년 한 14세 소녀의 부모가 그를 성추행 혐의로 플로리다 팜비치 경찰에 신고하며 그의 범죄 행위가 대중에 처음 알려졌다. 경찰 수사 결과 피해자는 30여명에 달했고 그들 대부분은 엡스타인 소유 저택에서 성폭력을 당했다. 이에 엡스타인은 2006년 미성년자 성매매 유도 및 매춘 등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2008년 그는 플리바게닝(유죄·형량 협상)을 통해 중범죄 기소를 피했다. 그는 법상 상대적으로 가벼운 혐의만 인정돼 고작 18개월 형량을 선고받았다. 복역 기간 중 낮 동안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는 특혜도 받았다. 이같은 황제 복역 생활도 출소가 3개월 앞당겨지며 고작 15개월에 그쳤다.
그의 죽음과 음모론

2019년 7월 8일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하고 있는 미국 연방검찰. 로이터=연합뉴스
‘성범죄자’ 딱지가 붙었지만 엡스타인의 생활은 변함없이 화려했다. 그는 여전히 성공한 금융 투자자로서의 위치를 누리며 세계 각국 정·재계 인사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그는 2019년 7월 미 연방수사국(FBI)과 뉴욕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드러나지 않은 그의 범죄가 발목을 잡았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노동부 장관 지명자인 알렉산더 아코스타가 과거 엡스타인과의 사법거래를 성사시킨 연방검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한동안 잊혔던 엡스타인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사회 전반에 퍼진 ‘미투’(MeToo) 운동 영향으로 침묵해왔던 피해자들이 잇따라 증언에 나섰고 여론의 압박 속 FBI는 엡스타인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엡스타인이 조직적으로 저질러온 성 착취 범죄의 실체가 드러났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내 본인 소유 섬에서의 성 착취 등 그간 드러나지 않은 범죄 행각이 밝혀진 엡스타인은 2019년 7월 미성년자 성 착취 및 성매매 혐의 등으로 체포돼 뉴욕 연방 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엡스타인은 체포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구금 중 사망했다. 당국은 그가 자살했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핵심 피의자가 재판에 서기 전 사망해 사건이 종결되며 미국 사회 전반에 거센 의혹과 불신이 확산됐다. 특히 그가 정·재계 유력 인사들과 폭넓은 교류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은 엡스타인의 죽음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트럼프와 엡스타인

지난 7월 28일 영국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에 항의하는 목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제프리 엡스타인의 사진을 전시한 이동식 광고밴 옆을 한 사람이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 해당 음모론을 통해 민주당을 공격하고 지지층을 결집했다. 그는 엡스타인의 죽음 배후에 민주당 중심 기득권 세력인 ‘딥 스테이트’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당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를 들춰내기 어려워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당선되면 엡스타인과 교류한 인사 명단 등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인 지난 7월 미 법무부는 엡스타인의 사인은 자살이고 엡스타인 관련 명단은 없다고 공지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엡스타인 사건 관련 정부 대처가 미온적이자 진영을 불문하고 비판이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세력도 등을 돌리며 ‘트럼프 대통령도 엡스타인의 범죄를 알고 묵인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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