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소년중앙] ‘농인의 언어’ 수어 통해 소통·교류의 장 넓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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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을 한다고 하면 으레 입을 통해 소리 내는 것을 떠올리죠. 하지만 목소리뿐만 아니라 손으로도 말하는 언어가 있어요. 손으로 말하는 언어를 '수어(手語)'라고 하는데요. 손뿐만 아니라 표정과 눈빛, 몸의 움직임을 사용해 의미를 전달하죠. 수어는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닌 청각장애인의 삶과 문화, 그리고 정체성을 담은 하나의 완전한 언어입니다. 최근 뉴스와 공적 행사에 수어 통역이 등장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편이지만, 여전히 수어는 '조금 특별한 언어' 혹은 '어렵고 낯선 분야'로 느낄 수 있어요. 사실 수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고대부터 청각장애인들은 몸짓과 손동작으로 의사소통을 해왔죠. 그러던 것이 지금처럼 ‘언어’로 체계화된 것은 18세기 유럽에서부터라고 전해져요. 프랑스의 교육자 샤를 미셸 드 레피가 청각장애 아동을 위한 교육에 수어를 도입하며 수어 교육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전 세계로 퍼졌다고 알려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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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를 수어로 표현한 서울수어전문교육원임민영 통역사와 이서윤 학생기자, 장민영 과장(왼쪽부터).

우리나라의 수어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요. 이 시기 일본수어의 영향을 받으며 한국의 수어가 형성됐고, 해방 이후 점차 우리 고유의 수어 체계가 발전했죠. 그러면서도 수어는 오랫동안 ‘말을 대신하는 도구’ 정도로 인식됐어요. 수어가 비로소 하나의 언어이자 문화로 자리를 잡은 건 2016년 ‘한국수어법’ 제정을 통해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갖는 언어로 인정받으면서입니다. 수어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 사투리도 존재하고 각 나라에서 쓰는 수어도 다르죠. 예를 들어 영국에 갈 땐 영어를, 프랑스에 갈 땐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처럼, 영국수어와 프랑스수어를 배워야 하는 거예요.

수어는 청인과 농인 모두의 소통을 도와 수어를 배우면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죠. 하지만 농인 모두가 수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적합한 대화 방식을 찾아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는 조언해요. 수어 이외에도 얼굴을 마주 보고 발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구화', 글을 써서 의사를 전달하는 '필담'이 있는데, 여러 방식 중 당사자와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농인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음성언어로 농인에 대해 수군대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으로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하고요. 소통에 있어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지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서윤 학생기자가 청각장애인과 소통하고자 서울수어전문교육원 장민영 과장과 임민영 통역사를 만나 수어에 대한 궁금한 점을 묻고 수어를 배워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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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영 과장은 한국수어 학습 시 능숙한 농인 강사에게 정확한 수어를 배워 올바르게 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어가 어떤 언어인지 설명해주세요.  

수어는 농인의 언어입니다. 수화라고도 하죠. 청각장애인이 모두 농인은 아니에요. 입 모양과 남아 있는 청력을 활용해, 여러분처럼 음성으로 대화하는 구화인도 있어요. 이들을 제외하고, 수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농인이라고 하죠. 음성언어를 듣고 말하는 사람, 즉 청인인 여러분에게 외국어보다 한국어가 편하듯, 제게는 한국어보다 한국수어가 편합니다. 수어에도 한국어 자음과 모음을 손짓으로 표현한 지문자가 있는데요. 이름을 비롯한 고유명사, 외래어, 학술용어 등 일반 수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를 정확히 전달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현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농아인협회가 제시한 자음 19개, 모음 21개의 표준화된 지문자가 전국적으로 통용되죠. 또 손가락 동작을 이용해 숫자 1부터 9까지 표현하는 지숫자도 있어요.

한국수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있나요.

수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달라요. 한국어의 기본 어순인 주어(S)+목적어(O)+동사(V)와 유사하지만, 문장 구성 방식이 다르죠. 수어는 한국어보다 어순 배열이 더 자유로운 편이며 고정된 어순보다는 문맥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요. 즉 수어는 국어처럼 정해진 어순을 따르지 않고, 의미나 강조에 따라 순서가 바뀔 수 있어요. 몸짓·표정 등 시각적 요소와 공간 활용이 중요하며, 동작의 순서나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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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어를 사용하는 시민들의 저변 확대를 위해 2009년 개원한 서울수어전문교육원은 한국수어를 보급하고자 다양한 홍보 및 캠페인을 펼친다.

시대에 따라 수어가 바뀌기도 하나요.

수어는 농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국어와는 문법 체계가 아주 달라요. 수어는 수어만의 문법을 가지고 발생해 시대에 따라 변해왔죠. 예컨대 조선시대에는 정식적인 수어 없이 제스처로만 소통했으나 일제강점기에 농학교가 설립되면서 수어가 공식화됐죠. 또한 한국수어에도 신조어가 있습니다. 젊은 농인들이 사용하는 신조어 중 중·노년층 농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재미있을 때 웃음을 표현하는 ‘ㅋㅋㅋ’도 수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 50~60대 이상인 농인 분들은 잘 모르는 편이세요.

수어는 나라마다 다른가요.

수어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한국수어는 한국 농인들 사이에서만 통해요. 여러분이 중국 청인과 소통하려면 중국어를 배워야 하듯, 저도 중국 농인과 대화하고자 하면 중국수어를 배우는 것이 좋죠. 다만 전 세계 농인의 공용어인 ‘국제수어’가 있습니다. 국제수어 역시 한국수어와 무관하게 따로 배워야 사용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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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가운데) 학생기자에게 간단한 수어를 알려주는 서울수어전문교육원 임민영(왼쪽) 통역사와 장민영 과장.

수어할 때 손 외에 다른 몸짓도 쓰나요.    

얼굴 표정과 입 모양은 손만큼이나 중요한 수어의 문법적인 요소입니다. 기쁘거나 아플 때, 표정에 따라 그 정도를 달리 표현할 수 있죠. 손 모양은 같으나 입 모양에 따라 단어의 뜻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아요. 예컨대 ‘기름’과 ‘능숙하다’는 손 모양은 같으나 입 모양이 다른 단어입니다. 얼굴 외에도 목·어깨 등 상체 부위가 적극적으로 사용됩니다.

수어를 배울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수어가 농인의 언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끔 수어에 능숙하지 않은 청인 강사에게 수어를 잘못 배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TV 뉴스에 등장하는 수어통역사 중에서도 잘못된 수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정보 제공자의 수어가 바르지 않으면 농인은 바른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수어에 능숙한 농인 강사에게 정확한 수어를 배우고, 올바르게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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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합니다'를 수어로 표현한 이서윤 학생기자는 기회가 되면 수어를 배우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수어를 잘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요.  

농인과 직접 의사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어를 잘 몰라도, 처음이라 부끄럽고 창피하더라도, 몸짓을 사용해서라도 농인과 대화해 보세요. 농인과 교류하면서 농인의 언어뿐 아니라 문화 역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을 거예요.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는 어린이도 다닐 수 있으니, 여기서 농인 강사님들께 수어를 배워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임민영 통역사님은 어떻게 수어를 접하게 됐나요? 배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책에서 수어통역사라는 직업에 대해 읽고 수어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어린이‧청소년 문학을 전공했던 만큼,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현재는 농인 직원분의 일을 보조하는 근로지원인으로 일하고 있어요. 정식 수어통역사 자격증 취득도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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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왼쪽) 학생기자랑 장민영 과장이 '안녕하세요'를 수어로 표현했다.

수어통역사라는 직업은 주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 자격이 주어지나요.

수어통역사가 되려면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주관하는 국가공인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며 필기시험과 수어 실기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해요. 만 19세 이상의 내·외국인이 응시할 수 있으며 모든 과목 평균 60점 이상, 각 과목당 40점 이상 득점해야 시험에 합격하죠. 필기·실기 합격 후 1박 2일 연수 수료 시 자격증이 발급되는데 이후 농아인협회 수어통역센터를 비롯해 시청·법원·경찰서·병원·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할 수 있어요. 자격증 시험은 어려운 편이며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업으로 전망도 좋은 편이에요. 저는 현재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장민영 과장님의 음성 전화 업무와 문서 작성 및 수어 교재 개발을 돕고 있습니다.
동행취재=이서윤(서울사대부초 5) 학생기자

수어를 배워봐요

1. 기초 단계 – 지문자·지숫자 익히기
손 모양 위치, 방향을 정확히 익히고, 천천히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2. 표현 단계 – 일상 표현 배우기
인사, 감정 표현, 가족·학교 관련 기본 단어를 외우며 표정 변화까지 함께 연습해요.

3. 문장 단계 – 수어의 어순 이해
한국어와 달리 수어는 시·공간 배치를 먼저 표현하고 동작을 나중에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나는 학교에 간다”는 ‘나–학교–가다’ 순서로 나타내기 때문에 시각적 요소와 공간 활용 등이 중요합니다.

■ 안녕하세요.
수어에서 ‘안녕’은 ‘평안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동작을 단정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
1 오른손을 펴서 손바닥을 아래로 향해요. 2 오른손 손바닥으로 주먹을 쥔 왼팔을 팔뚝부터 손목 방향으로 쓸어내려요. 3 이때 손바닥은 아래로 향하게 내려요.

■ 반갑습니다.
두 손을 약간 구부려 손끝을 양쪽 가슴에 대고 상하로 엇갈리게 두 번 움직입니다.
1 두 손을 가볍게 쥔 뒤, 가슴 앞에서 마주 보게 해요. 2 양손을 천천히 서로 엇갈리게 위아래로 움직여요. 3 이때 밝게 미소 짓는 게 좋아요.

■ 고맙습니다.
마음에서 감사함이 흘러나간다’는 이미지로 해석됩니다.
1 왼손의 손끝이 밖으로 향하게 펴서 몸 앞에 두어요. 2 왼손 위로 오른손을 펴서 모로 세워요. 3 고개를 약간 숙이고 동작이 너무 크지 않고 정중하면 됩니다.

■ 행복합니다.
'행복'의 의미를 담아,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인사입니다.
1 오른손 엄지, 검지, 중지, 약지 바닥을 왼쪽 볼에 댑니다. 2 엄지 바닥을 오른쪽 볼에 갖다 대요. 3 아래로 내리면서 손가락을 모아 붙이면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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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수어에 대해 알아보고 직접 배워보니 재미있었고 특별한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장민영 과장님은 농인이셨는데 목소리 대신 손과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어요. 수어로 말씀하실 때 손동작뿐만 아니라 표정까지 움직이기 때문에 표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수어를 배우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과장님이 천천히 알려주셔서 이날 한글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한 지문자를 배우고 간단한 의사소통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취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소통에 있어 상대방을 바라보는 자세와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소통하는 데엔 꼭 목소리가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니고, 눈을 보고 천천히 표현하면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수어를 배워보고 싶어요.

이서윤(서울사대부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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