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선정판사 위폐사건 이관술, 79년 만에 재심 무죄…“역사적 과오 바로잡아”

본문

bt53cdc93809e9adb728d7111b93377975.jpg

동경고등사범학교 시절 학암 이관술 선생.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 제공

해방 직후 좌우 갈등의 기폭제가 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처형된 독립운동가 고 이관술 선생이 재심을 통해 7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22일 통화위조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이 선생의 재심 선고공판에서 관련자들의 자백이 불법 구금 등 위법한 수사 과정에서 이뤄진 점을 들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1945년 말부터 1946년 초까지 조선공산당 핵심 간부들이 서울 소공동 근택빌딩에 있던 조선정판사 인쇄 시설을 이용해 6차례에 걸쳐 200만 원씩 총 1200만 원의 위조지폐를 제작했다는 혐의로 시작됐다. 조선정판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은행권을 인쇄하던 시설로,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이 접수해 당 본부로 사용하던 곳이다.

이 선생은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돼 1946년 미군정기 경성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다가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7월 대전 골령골에서 처형됐다.

재심은 이 선생의 외손녀 손옥희 씨가 2023년 7월 청구했다. 재판부는 미군정기 판결 역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검찰도 지난 15일 결심공판에서 당시 판결문과 일부 재판기록, 언론 보도와 연구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무죄가 타당하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재심 대상 판결 당시에도 유죄 증거는 적법절차에 따라 수집돼야 한다는 법리가 이미 형성돼 있었다”며 미군정 판결에도 인신구속과 증거법에 관한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공동 피고인들의 자백에 대해 “사법경찰관들의 불법 구금과 직권남용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고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며 모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존 판결에서 유죄의 근거로 제시된 주요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고, 나머지 증거들 역시 증거가치가 희박하다”며 “피고인에 대해 무죄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이 선생과 유가족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관술 선생은 1930~1940년대 항일운동을 벌인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일제강점기 수차례 체포와 고문을 겪었다.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그는 일제 경찰 노덕술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아 ‘불사조’로 불렸으며, 해방 직후 실시된 정치 여론조사에서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현영에 이어 5위에 오를 정도로 대중적 존경을 받았다.

손옥희 씨는 선고 직후 “오랜 세월 억눌려 왔던 정의가 마침내 역사 앞에 바로 섰다”며 “이번 판결은 단순한 형사사건의 바로잡음이 아니라, 해방 직후 국가 권력이 정치적 목적 아래 허구의 범죄를 만들어낸 역사적 과오를 대한민국 사법부가 79년 만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0,970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