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럽이 반한 700년 전 보물, 광주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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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해저 도자 전시실’. [사진 국립광주박물관]

전시실 입구에서 국화 넝쿨무늬가 선명한 청자 한 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품에 안으면 꽉 찰 것 같은 높이 68.8㎝ 꽃병이다. 1975년 전남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어부 그물에 걸렸던 청자 6점 중 하나다. 이듬해 시작된 침몰선 발굴조사에서 도자기 2만 5000여 점과 금속제품, 자단목 등 무역품에다 동전도 무려 28톤이나 나왔다. 함께 출수된 목간(일종의 뱃짐 꼬리표)을 통해 이 배가 1323년 중국 경원(현재 닝보)을 출발해 고려를 거쳐 일본 하카다로 향하던 무역선임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수중 고고학의 새 지평을 연 신안해저선이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그로부터 반세기만에 신안선 유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매곡동 국립광주박물관 안에 새로 개관한 도자문화관 1층 ‘신안해저 도자 전시실’에서다. 해저 진흙 속에서 700년간 원형을 유지한 청자·백자·흑유 등 6500점이 각양각색의 맵시를 뽐낸다.

‘아시아 도자문화 교류의 거점’을 목표로 약 4년간 준비 끝에 연 도자문화관은 연면적 7137㎡ 규모로 한국도자 1000년사를 집약한 ‘한국 도자 전시실’, 길이 60m 파노라마 스크린의 ‘디지털 아트존’ 등을 갖췄다. 최흥선 관장은 “광주 충효동 가마를 통째 옮겨와 전시하는 등 전남 지역 출토 도자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애초 국립광주박물관 자체가 신안선 유물을 수용하기 위해 추진돼 1978년 개관했다. 하지만 워낙 유물이 방대하고 연구 및 보존처리가 길어지면서 그간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왔다. 이번에 도자문화관이 개관하면서 마침내 유물 약 2만점이 광주로 옮겨왔다. 장성욱 학예연구관은 “앞서 상설전시실에서 1000점 가량을 소개해 왔는데, 신안 전시실에선 전시 수량도 대폭 늘리고 14세기 무렵 도자기의 생산·유통·소비 전반을 파악할 수 있게 구성했다”고 말했다.

신안선은 애초 중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선박이라서 출수 유물 대부분이 중국산 자기다. 전시실에선 훗날 유럽에 시누아즈리(chinoiserie, 중국풍이란 의미의 프랑스어) 열풍을 일으키는 당대 최고의 자기 생산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신안선 유물 중에 고려청자가 7점 포함됐단 점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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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해저 도자 전시실’에 전시된 청자 ‘여인’. [사진 국립광주박물관]

장 연구관은 “그 당시 도자기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반도체처럼 최첨단 기술 집약 상품인데, 신안선을 통해 고려자기가 중국산과 대등하게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실은 ‘만약 신안선이 침몰하지 않고 일본으로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력으로 당대 일본의 ‘가라모노’(唐物·중국으로부터 전해진 문물) 애호 문화도 소개한다.

국립광주박물관의 도자문화관은 국립박물관의 지역문화 특성화 전략 사례 중 하나다. 국립박물관은 각 지역박물관의 차별화 포인트를 살린 전시관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생김새부터 옹관을 빼닮은 국립나주박물관의 마한시대 옹관 상설전시가 대표적이다. 이달 23일 문을 연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대향로관’은 국보 ‘백제금동대향로’만을 위해 77평(약 254㎡) 규모의 공간을 할애했다.

국립청주박물관은 금속유물, 국립전주박물관은 서예문화가 강점이다. 임진왜란과 조선 군사문화에 특화돼 ‘밀덕’(밀리터리 덕후)들이 애호하는 국립진주박물관은 2028년께 신축 이전하면서 전쟁·외교·무기 콘텐트를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국립대구박물관도 내년까지 복식문화관을 통해 ‘의상·복식’ 전시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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