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다카이치 대만 발언 타이밍 나빴다…중일 갈등 1년 지속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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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이 나온 지 약 두 달, 중·일 갈등은 장기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카이치 총리에 대해 스스로가 후계자로 자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 달리 정밀한 외교 전략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연합뉴스
일본의 대표적인 국제 정치 전문가인 사하시 료(佐橋亮) 도쿄대 교수는 지난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대해 “미·중 관계 호전 등 일본 외교가 처한 국제 정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적어도 내년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까지는 일·중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 미·중 간에는 “좋은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며 “미국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공급을 가속하는 등 상당한 거래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일·한 관계는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일본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다”면서 “양국이 함께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26일 일본 도쿄대에서 사하시 료 도쿄대 교수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미·중간 상당한 거래 우려”
-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어떻게 봤는가.
- 발언 내용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한 직후였기에 타이밍은 잘못됐다. 설명 방식도 정중했다고 할 수 없다. 총리 발언은 미국의 대만 유사시 개입을 전제로 했는데, 미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미·중 관계가 매우 호전되고 있으며, 중국은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국제 정세 등 일본 외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일본과 중국 관계는 복잡한 것이며, 강경 일변도로만 나아가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니다. 총리의 아시아 외교 비전은 불분명한 점이 있다.
- 양호한 미·중 관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나.
- 내년에는 좋은 관계가 이어질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4월 방중을 비롯해 최소 4차례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달 공개된 미국의 국가안전보장전략을 보면 중국의 정치 체제에 언급하지 않았고, 권위주의 체제의 지도자를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만 문제와 경제 안보 분야에서 상당한 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미국이 최근에 첨단 반도체를 중국에 공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더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선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 이러한 미·중 관계가 중·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 일본에게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 외교는 일·미 동맹을 ‘지렛대’로 삼아 중국과의 협상력을 높여왔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일·미 동맹도 대중 관계도 둘 다 중요하다는 입장이고, 일본을 뒤에서 지지해줄 존재가 없는 상황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전에 미국을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우선 (대만 유사시 발언으로 불안정해진)신뢰 관계 재구축을 목표로 하게 될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 여러 가지 요구를 할 수 있는 회담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2018년 10월 베이징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내년 야스쿠니 참배 가능성 배제 못해”
- 향후 중·일 관계 전망은.
- (양국 갈등)사태는 장기화될 것이다. 적어도 1년 정도는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 내년 11월 중국 선전(深圳)에서 열리는 APEC을 앞두고 회복력이 작용할 지가 관건이다. 아베 전 총리도 (2012년 센카쿠 열도 국유화로 관계가 악화된 후) 2013년부터 관계 개선을 위한 흐름이 생기면서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APEC을 계기로 정상회담을 가졌다. 비슷한 일이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당시는 미·중 관계가 악화되어 있었다.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 다카이치 총리는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 내각 지지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강경 자세를 계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의 외교적 폭을 좁히고 일본에는 이익이 없을 것 같지만, 국내 정치를 고려하면 현재의 방침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적다. 외교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당분간 자제하고 외국인 정책에 중점을 두지 않을까.
- 아베 전 총리는 정권 출범 1년 만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현재까진 참배를 자제하고 있다.
-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카이치 총리가 보수파라는 것은 명확하기 때문에, 보수 세력으로부터의 압력은 현재까지 높지 않다. 하지만 내년엔 참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플레이션과 엔저가 지속되는 등 경제 환경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단행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지지 기반인 보수 세력에게 아베 전 총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비공식 약식 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국의 CPTPP 가입 협상 조기에 시작할 수도”
- ‘안보 3문서’ 개정에 대해 한국 등 주변국에선 군사력 증강을 위한 것이라며 우려한다.
- 안보 문서 개정이나 방위비 증액 등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이 지역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비핵 3원칙’(핵무기 생산·보유·반입 금지) 중 ‘핵무기 반입 금지’를 재검토해 실질적인 ‘2·5원칙’으로 전환하자는 논의 역시 미국의 확장억제 기조의 연장선상이며, 독자적 핵무장론과는 전혀 다르다.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은 한국에게도 이익이 된다.
- 내년 1월에는 나라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 다카이치 총리가 일·한 관계만큼은 중시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며, 희망을 느낀다. 양국 관계는 오랫동안 미국 없이도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지가 과제였다. 현재 일·한 관계가 합리적이고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일본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도 균형 감각이 있다는 평가가 퍼지고 있어, 이 대통령이 먼저 중국을 방문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을 것 같다.
- 양국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협력해 나가야 하는가.
- 앞으로 세계는 미국이 없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갈 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 G7에서도 미국의 존재감은 점점 약해질 것이므로, G7에만 집착해봐야 소용없다. 일본과 한국의 이익은 상당히 일치하며, 호주나 유럽연합(EU) 등과 함께 외교력을 가진 국가들은 결집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으로서의 책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한국이 가입하는 것을 환영한다. 비교적 조기에 가입을 위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하시 료 도쿄대 교수
1978년 도쿄 출생. 도쿄대 대학원 박사(법학). 호주국립대 박사연구원, 스탠퍼드대 객원준교수, 가나가와대 교수 등을 거쳐 2025년부터 도쿄대 교수로 재직. 저서로 『미중대립』 등. 2023~2024년 8개월간 서울대에 유학해 한국어를 배웠으며 현재도 계속 공부하고 있다. ‘일·한포럼’ 등을 통해 일본과 한국 전문가들과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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