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차베스가 뿌린 反美의 씨앗…마두로 축출로 27년 악연 종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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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베네수엘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에 대규모 공습을 벌인 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체포해 국외로 이송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사실 양국은 20세기까지만 해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배경엔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립(1960년 9월) 회원국이자, 2024년 기준 세계 원유 매장량 1위(3032억 배럴, OPEC 집계)인 베네수엘라의 원유가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 90년대까지 美 동아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2006년 유엔총회에서 미국의 진보성향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쓴『패권인가 생존인가-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는가』를 들어 보이며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1918년 베네수엘라가 원유를 처음으로 수출한 이래 미국은 베네수엘라 원유의 주요 수입국 중 하나였다. 특히 70년대 1차 오일쇼크 위기로 중동 석유 공급이 급감한 상황에서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동아줄이었다. 미 에너지정보국(EAI)에 따르면 73년 미국 전체 원유 수입량 중 32.7%가 베네수엘라산이었다. 76년 베네수엘라가 석유 국유화 정책을 추진하며 잠시 주춤했지만, 베네수엘라가 90년대 자국 석유 개발 시장을 외국에 개방하며 90년대 후반 20%대까지 다시 증가했다.
“부시는 악마” 반미 아이콘 차베스 등장
양국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99년 2월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다. 좌파 성향 군인 출신인 차베스는 석유 자원을 무기화해 미국을 위협했다. 엑손모빌 등 미국 대형 석유 기업이 개발해 오던 베네수엘라 최대 유전 지대인 오리노코 벨트 등을 일방적으로 국유화했다. 이렇게 확보한 ‘오일 머니’로 무상 교육·의료 정책을 펼쳤다.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시내에 미군의 공습으로 인한 폭발로 추정되는 화염이 일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기에 차베스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적극적인 반미 행보를 보였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자신의 정치 기반을 넓히고, 중남미 반미 연대의 구심점으로 존재감을 키웠다. 미국이 중남미 일대에서 추진해 온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반대를 주도해 2005년 무산시켰다.
특히 2006년 9월 뉴욕 유엔총회 연설로 차베스는 전세계에 자신을 반미의 아이콘으로 각인시킨다. 그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겨냥해 “악마가 어제 여기 왔었다. 마치 자신이 세계의 주인인 것처럼 얘기했다”며 “미국이 세계 인민들을 지배, 착취, 약탈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지난 201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남미국가연합(UNASUR) 회의에 참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당시 대통령(왼쪽)과 니콜라스 마두로 외무장관. AFP=연합뉴스
차베스의 행보에 미국은 2005년 처음으로 베네수엘라를 제재하며 응수했다. 테러와의 전쟁과 마약 단속에 비협조적이란 이유로 미국산 무기 수출과 이전을 금지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차베스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인사를 건네며 관계가 개선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15년 오바마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정부 고위인사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입국 제한 등 추가 제재를 벌였다. 차베스가 암으로 숨진 이후 후계자로 지목돼 2013년 대통령에 당선된 마두로가 ‘민주주의 훼손과 인권유린, 부패’ 등을 벌였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마두로 부정선거 논란 후 관계 단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AFP=연합뉴스
양국 관계는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후 더 악화한다. 트럼프는 2017~2018년 잇따라 베네수엘라 제재를 강화했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 등의 미 금융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PDVSA의 미국 내 자산 동결, 베네수엘라와의 금융거래 제한도 실시했다.
2018년 대선에서는 마두로가 재선에 성공했지만, 트럼프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야당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국가원수로 승인했다. 마두로 정권은 불법 좌파 정권으로 규정했다. 이듬해 베네수엘라산 석유 수출도 일방적으로 금지하면서 양국의 공식 외교 관계는 단절됐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며 양국 관계엔 개선의 조짐이 보이는 듯했다. 유가 안정, 난민 억제, 민주주의 정착 지원 등을 목표로 바이든 행정부가 원유 수출 등 베네수엘라 제재를 일부 완화하며 유화적 접근법을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트럼프가 재집권하며 곧바로 폐기됐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인 지난해 1월 리처드 그레넬 특사를 베네수엘라에 파견해 협상을 벌여 현지에 구금된 미국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 17명을 귀환 시킬 때만 해도 양국 관계는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얼마 뒤 마두로 정권 붕괴를 목표로 한 군사·경제적 압박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마두로는 마약 조직 수장” 칼 빼든 트럼프

특히 트럼프는 지난해 9월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마두로를 마약 테러 조직의 수장으로 지목했다. 이후 지상전을 염두에 두고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 핵추진 항공모함, 구축함과 전략폭격기 B-1·B-52, 스텔스 전투기 F-35, 무인공격기 MQ-9 리퍼 등 약 2만 명의 병력을 전개했다. 지난달에는 특수작전 항공기와 특수부대 병력을 카리브해에 추가 배치했다.
이와 별도로 미국은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을 지나는 마약 운반 의심 선박을 공격하거나 불법 석유 수송 의심 유조선을 나포하며 베네수엘라를 압박했다. 같은 달 16일엔 마두로 정권을 ‘외국 테러 단체(FTO)’로 지정하고, 제재 대상 유조선을 전면 봉쇄하며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올렸다. 결국 트럼프는 3일 공습을 통해 공식적으로 마두로를 축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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