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기구, 미국 국익에 반해 운영", 트럼프, 국제기구 66곳 탈퇴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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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미국이 참여해 온 국제기구 66곳에서 탈퇴하도록 지시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유엔(UN) 산하 기구 31곳과 비(非)유엔 국제기구 35곳이 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 전 부처와 기관에 이들 기구에 대한 즉각적 참여 중단과 자금 지원 중지를 명령했다.

유엔 경제사회국, 국제무역센터, 유엔무역개발회의, 유엔민주주의기금, 유엔기후변화협약 등 평화·인권, 기후, 무역 등과 관련한 기구 및 기금 31개가 탈퇴 대상 유엔 산하 기구로 명시됐다. 비유엔 기구 역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국제에너지포럼, 세계자연보전연맹 등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감을 보이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나 ‘PC(정치적 올바름)’와 관련된 단체 또는 협약들이다.

“국제기구, 미 국익에 반해 운영”

백악관은 이들 기구를 두고 “미국의 국가 이익, 안보, 경제적 번영, 주권에 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비판했다. 이번 탈퇴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백악관은 팩트시트(설명 자료)에서 “대통령 명령으로 미국이 회원국 또는 당사국으로 참여하거나 자금을 지원·후원하는 모든 국제 정부 간 기구, 협약, 조약을 대상으로 미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검토한 결과”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또 “이들 기구 중 다수는 미국의 주권 및 경제적 역량과 충돌하는 급진적인 기후 정책, 글로벌 거버넌스, 그리고 이념적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며 “미국 납세자들은 이들 기구에 수십억 달러를 냈으나 거의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 기구는 종종 미국 정책을 비판하거나, 우리 가치관에 반하는 의제를 추진하거나,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면서도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해 납세자 돈을 낭비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구들에서 탈퇴함으로써 납세자들 돈을 절약하고 자원을 ‘미국 우선주의’ 과제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게 백악관의 설명이다.

“미, 수십억 달러 냈지만 보상 못 받아”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기구를 협력의 장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 선택을 제약하고 비용만 떠넘기는 구조로 인식해 왔다.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세계보건기구(WHO), 파리기후협정 등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에도 유엔인권이사회(UNHCR),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유네스코(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탈퇴를 결정하고 자금 지원 중단을 명령했다.

이런 흐름에서 나온 이날 결정을 두고 ‘미국 우선주의’ 관점에서 국제기구를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적 인식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창설 80주년을 맞은 지난해 9월 제80차 유엔 총회 연설에서 “유엔은 무능하고, 공허한 말뿐인 기구”라고 비난하며 ‘유엔 무용론’을 재점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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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후 국제 체제 재편 불가피

트럼프 대통령의 국제기구 대거 탈퇴 결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운 국제 공조 체제를 사실상 해체하겠다는 선언으로도 받아들여지면서 국제 질서의 구조적 재편 등 파장이 예상된다. 당장 국제기구 재정에 직접적 충격이 미칠 전망이다. 미국은 다수 국제기구에서 최대 분담국 지위를 차지해 왔다. 유엔 정규 예산의 약 20% 이상을 부담해 왔고, 보건·교육·난민·개발 관련 일부 기구에서는 미국의 기여금이 운영의 핵심축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기구 탈퇴로 절감한 예산을 국경 안보, 국방비, 사회 인프라 등 미 국익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대거 탈퇴로 해당 기구들의 사업 축소 및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특히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보건·교육·구호 프로그램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불안정성을 키워 미국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빠진 자리는 또 다른 강대국이 메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은 이미 유엔 산하 여러 기구에서 재정 기여를 확대하며 영향력을 넓혀 왔다. 국제무대 전반에서 미국의 퇴조는 자연스럽게 중국의 발언권을 더 키우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미, 다자주의 대신 독자 노선 강화

동맹국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가치·이해를 공유해 온 한국과 일본, 유럽 등은 미국의 공백 속에서 더 많은 재정적·정치적 책임을 떠안고 국제기구 내 힘의 균형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미국이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 작전에 이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향한 영토 야욕을 노골화하는 등 팽창주의적 행보가 이어지는 와중에, 국제기구 대거 탈퇴 결정까지 나왔다는 점에서 국제사회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다자주의 대신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독자 노선을 강화한다는 기조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9010억 달러(약 1307조원) 규모의 2026 회계연도 국방예산을 2027년에는 50% 이상 늘려 1조5000억 달러(약 2176조원)로 늘리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국방비 대폭 증액 계획은 트럼프 행정부가 ‘돈로 선언’(서반구에 대한 유럽의 간섭 배제를 골자로 한 1823년 먼로 선언의 도널드 트럼프 버전)과 함께 서반구(아메리카대륙) 패권 재건을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공개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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