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흙으로 빚은 60년 예술혼, 신상호 회고전 '무한변주' [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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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1947년~) 작가는 흙을 매체로 독자적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인물이다. 지난 60년간 도자는 물론 조각과 회화를 넘나들며 한국 도예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선구자로 활약했다.

3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에서 작가의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가 열린다. 이 전시는 그의 작업 세계를 동시대적 시선으로 재조명하며, 한국 현대 도예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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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제작한 연작 ‘아프리카의 꿈-토템’을 전시한 공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60여 년간 이뤄낸 한국 도예의 확장
신상호는 1960년대 경기도 이천에서 장작 가마를 운영하며 전통 도예로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도조(陶彫, 도자 조각)’라는 장르를 개척했고, 도조와 회화적 요소를 결합한 ‘도자 회화’에 이르기까지 도자의 모습을 다양하게 바꿔 놓았다. 또한 도자 타일 혹은 건물 외벽을 도자로 장식하는 ‘도자 설치’ ‘건축 도자’ 작업을 통해 미술과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개방적이고 융합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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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 작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그는 전통을 재현의 대상이 아닌, 현대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실험해야 할 개념으로 바라봤다. 작가의 작품이 일반적인 도자기 형태를 넘어 다채롭게 구현된 건 도자 예술을 향한 그의 실험적 사고를 방증하는 결과물이다. 전시 제목 ‘무한변주’ 역시 한국 도자의 전통적 형식과 의미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 작가의 예술 여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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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신상호 작가의 개인전 《신상호: 무한변주》 포스터.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 공예 예술 발전의 조력자, 로에베
이번 전시의 공식 후원사는 스페인의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로에베다. 브랜드 측은 “전 세계의 젊은 공예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선사해 온 신상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이번 회고전을 공식 후원한다”고 밝혔다. 1846년 마드리드의 작은 가죽 공방에서 시작한 로에베는 지난 180년 동안 공예와 혁신을 핵심 가치로 삼아온 브랜드다. 이에 더 나아가 브랜드는 1988년 공예를 포함해 무용∙시학∙사진 등 예술 분야의 유산 보존을 목표로 로에베 재단을 설립했다. 브랜드를 창립한 로에베 가문의 4대손 엔리케 로에베 린치가 설립한 이 재단은 현재 그의 딸 쉴라 로에베가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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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작품인 ‘보이지 않는 부분들’. 도자 조각(도조)을 활용한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로에베 재단은 2016년부터 공예상을 설립해 현대 공예 발전에 힘을 더하고 있다. 현대 문화 속 공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 분야에 혁신을 이룰 재능과 비전, 의지를 가진 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세계 최대의 아트 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 서울 기간에 한국 공예 작가와의 협업 전시를 선보인 것도 로에베 재단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로에베와 재단이 강조하는 공예는 과거의 기술을 보존하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재료에 대한 충분한 이해, 수없이 반복되는 장인의 수작업 등 공예의 본질을 적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현대 미술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그렇기에 신상호 작가의 지난 여정은 로에베의 철학과 그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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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와 힘-이드’를 중심으로 동물의 다양한 움직임을 담은 작품을 전시한 공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경계를 넘나드는 도자 전시
전시는 총 5부로 이뤄졌다. 작가의 도자 작품 약 90점과 아카이브 자료 70여 점이 함께 소개된다. 1부 ‘흙, 물질에서 서사로’에서는 1960~90년대 전통 도자 세계를 조명한다. 초기 개인작을 통해 작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90년대 ‘분청’ 연작에선 작가 특유의 기법과 호방한 회화적 표현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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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흙 위에 백토를 바르고 상감, 분장, 인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표면을 장식하는 분청 기법으로 완성한 작품 ‘분청’의 전시 공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부 ‘도조의 시대’는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인 도조 작품을 다룬다. 이 시기 작가는 미국 체류 경험과 국제 교류를 계기로 조각과 회화적 요소를 결합한 도조 작업을 본격화했다. ‘꿈’, ‘아프리카의 꿈’ 등 연작이 대표작으로 흙의 원초적 생명력과 구조적 힘을 작품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3부 ‘불의 회화’에서는 건축 도자와 도자 타일을 중심으로 한 그의 실험성을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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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형상을 조각으로 구현한 ‘꿈-수호자’ 시리즈.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프리카 공예품, 중국 청화백자, 산업 기기 등 다양한 사물과 도자를 결합한 4부 ‘사물과의 대화’, 2017년 이후 전개된 도자 회화 작업이 주를 이루는 5부 ‘흙의 끝, 흙의 시작’ 역시 깊은 울림을 준다. 김성희 MMCA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한 현대 도자 공예 거장전”이라며 이번 전시가 “신상호의 독창적 예술 세계를 통해 흙이라는 물질의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한국 현대 도예에 대한 시각이 확장되는 계기”라고 전시 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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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흙의 끝, 흙의 시작' 전시 공간 전경. 지난 10여년 간 작가가 몰두한 도자 회화 작업을 볼 수 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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