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3·1운동 성지서 이슬람교 기도소리…발안시장의 '낯선 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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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시대 -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 온다
4년 뒤 국내 체류외국인은 300만명으로 전망된다. 인구 절벽에 따른 이민자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력 확보 차원을 넘어 사회통합까지 고려한 섬세한 이민 정책이 절실하다. 중앙일보는 이미 도래한 ‘이민시대’ 현장의 내외국인을 두루 만나 서로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했다.

화성 발안만세시장 지원오피스빌 빌딩에 있는 동남아 식당 미얀마마을. 이 자리는 과거 한국인이 운영하는 볼링장이었으나 코로나19 이후 페업한 뒤 미얀마 국적 이주민이 들어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경기 화성시 향남읍 발안만세시장에 있는 식당 ‘미얀마 마을’. 문을 열자마자 레몬그라스 향이 진하게 흘러 나왔다. 카운터엔 미얀마 정치인 아웅산 수치의 사진과 작은 불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홀에선 외국인들이 소 힘줄을 곁들인 카레에 인디카쌀을 비빈 음식을 먹었다. 식당 크기는 396㎡(120평). 100명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크기다. 식당으로 바뀌기 전, 이 자리엔 1994년부터 한국인이 운영하던 볼링장이 있었다.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지만 코로나19 시기 손님이 줄며 4년 전 폐업했다. 식당 입구 볼링장 안내판 위에는 동남아 소가 멍에를 지고 밭을 가는 사진이 덧붙는 등, 볼링장은 이제 흔적으로만 남았다.

화성 발안만세시장. 베트남 식료품 가게에서 물건 사는 외국인들. 김종호 기자
식당 맞은편 ‘제로마트발안점’에선 베트남 국적 계산원이 손님을 맞이한다. 태국산 두리안, 러시아 보드카, 중국 고량주 등이 진열장이 채웠다. 인근 아시아마트엔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이 사탕수수와 베트남 건고추, 느억맘 소스 등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시장 안 이슬람사원에선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기도 전 외침) 소리가 흘러나왔고, 시장 끄트머리 발안성당에선 필리핀 이주민이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눈을 감고 기도했다.
‘글로벌마켓’ 된 100년 전통시장, 양꼬치거리 된 해물탕거리
발안시장은 역사가 깊은 전통시장이다. 1919년, 400여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3·1 만세운동의 진원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100여개의 외국인 상점이 들어선 ‘글로벌마켓’으로 탈바꿈했다. 상인회 조사에 따르면 상점 운영자들은 17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을 위한 상점 안내지도도 별도로 만들어 배포한다. 한국인 노동자가 빠져나간 시화공단·발안산단 등을 대신 채운 이주민들이 향남읍에 터를 잡았고, 시장은 경기남부와 충북 권역 이주민들이 모여 드는 ‘만남의 광장’이 됐다. 김동성 시장상인회 매니저는 “향남 1·2지구에 주로 사는 젊은 한국인들은 시장을 찾지 않는다. 고객 80%가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인천 부평구 명물이었던 '해물탕거리'는 부평동의 중국인 유입이 늘면서 '양꼬치·마라탕' 거리로 변했다. 손성배 기자
한때 번창했던 인천 부평구 ‘해물탕 거리’는 ‘양꼬치·마라탕’ 거리로 변모했다. 시장로터리에서 대정사거리까지 약 250m 구간에 해물탕집 10여개가 밀집했지만, 현재 남은 건 단 2곳뿐이다. 반면 양꼬치·마라탕 식당과 중국어 간판을 내건 환전소·미용실은 20곳이 넘는다. ‘해물탕거리’란 글자가 적힌 철제 간판도 3년 전 철거됐다. 길제훈 대하해물탕 사장은 “중국인들이 들어오면서 상가 임대료가 전반적으로 비싸졌다. 일부 중국인들끼리 담합해서 올린 것”이라고 전했다.
이민자 300만명 시대…“수용성이 가장 취약한 부분”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체류외국인은 272만5083명. 장기체류외국인만 224만9475명에 달한다. 35년 전과 비교해 50배 넘게 증가했다. 추세 상 2030년엔 전체 체류외국인 수가 3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반면 한국 신생아 수는 지난 2024년 23만8317명으로, 30년 만에 3분의 1토막 났다. 합계출산율은 0.7명에서 맴돌고 중위 연령은 46.7세로 치솟았다. 특히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은 이민자 규모와 의존성 등 모든 면에서, 의도치 않은 ‘국제도시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현실이 된 이민시대에 사회통합 논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주민과 한국인 간의 차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갈등을 최소화하며 공존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이익도 크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법무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원(연구원) ‘이민자 사회통합지수 측정 및 정책컨설팅’ 자료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통합지수는 100점 만점에 64.9점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이를 “이민자의 생존에 필요한 건강권 등 한국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삶의 권리는 보장되는 상황이지만, 사회통합에 대한 제도 및 정책적 인프라는 보완의 여지가 높은 초기 단계”로 분석했다.
전반적인 점수는 높지도 낮지도 않다고 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문제가 선명해진다. 여러 조사 영역 중 특히 수용성과 정서적 통합 부문의 점수가 가장 낮았기 때문. 사회통합지수는 ‘통합기반’(법·제도와 행정인프라 등), ‘통합촉진’(수용성·의사소통·사회연계 등), ‘통합상태’(소득·주거·복지·노동·교육 상태 등) 3가지 차원으로 구성됐다. 이중 통합기반은 62.4점, 통합 상태는 75.7점으로 비교적 양호했지만, ‘화학적 결합 척도’로도 해석할 수 있는 통합촉진은 55점으로 취약했다.

화성 발안만세시장. 만세시장에 모여든 외국인들. 김종호 기자
중앙일보가 창간 60주년을 맞아 한국언론학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한국인의 자화상’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 응답자는 ‘이민시대’를 긍정했다. 다문화 사회가 되는 것이 한국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 66%가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답한 사람은 28%에 불과했다. 문병기 한국이민정책학회 명예회장은 “인구 절벽으로 이민자 유입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은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지 오래”라며 “유입 이후 생활 전선에서 이주민과 마주할 때 형성되는 수용성 등이 이민시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최서리 이민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정 지역과 분야에 한 번에 인구가 유입되면 어떤 방식으로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그 영향은 ‘실제’일 수도 있고 국민들의 ‘인식’일 수도 있으며, 인식이 이주민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져 사회갈등을 촉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민이 증가하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이민정책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주민에겐 이민 관련 법제도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만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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