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치매母, 파킨슨父 왜 나만 돌봐!" 딸 불평 잠재운 부모 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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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놀이터에서 만나 장에 가기로 했던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시간 약속엔 늘 철저했죠. 그날은 달랐습니다. 30분 넘게 기다렸는데 어머니는 끝내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날부터였어요. 어머니의 기억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깜박이기 시작한 게.

알츠하이머입니다.

그날로부터 1년 뒤,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습니다. 알츠하이머는 뇌 신경세포가 손상되는 병입니다. 의사는 “서서히 기억력이 저하될 것이고, 언어력·판단력·일상수행력까지 잃어갈 것”이라고 했죠. 시한부 선고나 다름 없었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더군요.

‘무엇부터 해야 하지?’ ‘오진 아닐까?’ ‘가만, 엄마가 이제 날 기억할 수 없다고?’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맴 돌았습니다.

그때 어머니, 아버지의 대화가 들려왔습니다.

당신, 올해 안에 새 장가 가긴 글렀슈.(어머니)

신년 계획은 다 틀어졌네.(아버지)

수 틀렸지 뭐.(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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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유진 작가의 어머니 우애령(81) 소설가와 엄정식(84)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뒤에 있는 조각상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엄유진

이 심각한 날, 이토록 심드렁한 대화라니…. 어머니 우애령 소설가와 아버지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의 내공이 깃든 이 티키타카 덕분에,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그날이 제 머릿속에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박제됐습니다. 우리 가족은 눈물은커녕 진료실이 떠나갈 정도로 한바탕 웃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아버지는 파킨슨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날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제안으로 온 가족이 함께 왁자지껄하게 ‘파킨슨병 파티’를 열었으니까요.

딸인 저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웹툰 작가 엄유진입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소설가 어머니와 파킨슨병을 앓는 철학자 아버지, 여기에 저의 태국인 남편, 호기심 많은 딸, 외국살이 하는 오빠네와 남동생네 가족까지. 대가족의 일상을 담습니다. 남의 집 이야기를 누가 볼까 싶은데, 인스타그램(@punj_toon) 팔로어가 20만 명에 달합니다. 팔로어의 요청으로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단행본도 두 권이나 나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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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유진 작가가 26일 서울 합정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사람들이 저희 가족의 이야기에 호응하는 이유가 뭘까요. 아마 여느 코미디 프로그램 못지 않게 재미있는 저희 부모님 공이 클 겁니다. 두 분은 장난꾸러기 소년·소녀처럼 실없는 농담과 대화로 하루를 채웁니다. 저는 그저 이분들을 돌보는 친구 같은 존재고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찰리 채플린)이란 말이 있죠. 그런데 독자분들의 눈에 비친 저희 가족의 일상은 가까이에서 마주한 비극마저 시트콤처럼 가볍고 즐겁다고 합니다. 마치 ‘파킨슨병 파티’처럼요.

아버지가 파킨슨병 판정을 받던 날, 눈물이 떨어지더라고요. 애써 감추며 돌아섰는데, 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계셔요. 당신 증세에 대해 몇 날 며칠을 걱정하셨거든요. ‘병명을 몰라 불안했는데, 이제 이유가 확실해졌다’며 좋아하시는 거예요. ‘불확실성에서 해방된 기쁨’을 못 누릴 이유가 없더라고요.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지 8년, 이제 어머니의 기억도 끝에 다다랐습니다. 파킨슨병 판정을 받으신 아버지의 체력도 예전만 못합니다.

은퇴 후 책을 실컷 읽고 싶으셨던 어머니는 인지기능이 무너지는 바람에 이제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셨어요. 노년에는 여유롭게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던 아버지는 손가락 감각이 굳어 붓을 잡을 수 없게 됐고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속상하죠. 

부모님을 돌보는 저는 몸이 열개라도 부족합니다. 태국인 남편도 챙겨야 하고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딸도 엄마를 필요로 하죠. 나날이 늘어가는 치료 비용도 부담입니다. 문득, 오빠와 남동생에 대한 억울함이 폭발합니다. 같은 자식인데 이들은 외국살이를 하며 부모님을 들여다보지 않는 게 왈칵 서럽습니다. 어느날 “왜 나만”이라며 폭발하고 말았죠. 저희 집은 지금도 화목할까요?

(계속)
엄 작가를 만나 물었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심각한 질병을 판정받는다면, 자식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할 때, 희미해진 정신으로 밤마다 집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어떻게 그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지. 그리고 자녀끼리 부모 돌봄에 대한 역할을 어떻게 분담할지, 날로 늘어가는 치료 비용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엄 작가는 자신의 경험담을 속속들이 털어놨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이어집니다. URL을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넣으세요.

-“병원 안 가” 어머니 고집 꺾은 아버지의 꾀
-요양원이냐 집 간병이냐, 선택 전 이것 체크
-형제 중 나만 희생? 억울하지 않으려면
-좋은 이별을 위해 준비할 것들

☞"치매母, 파킨슨父 왜 나만 돌봐!" 딸 불평 잠재운 부모의 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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