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이랑GO] 보리·밀·옥수수가 알려주는 한국 식문화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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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심심해~”를 외치며 꽁무니를 따라다닌다고요? 일기쓰기 숙제하는데 ‘마트에 다녀왔다’만 쓴다고요? 무한고민하는 대한민국 부모님들을 위해 ‘소년중앙’이 준비했습니다. 이번 주말 아이랑 뭘할까, 고민은 ‘아이랑GO’에 맡겨주세요. 이번 주엔 곡물로 알아보는 한국인 탄수화물 섭취 변천사에 대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기획전 ‘탄수화물 연대기’에 가다
수소·산소·탄소로 이뤄진 탄수화물은 단백질·지방과 함께 우리 몸의 3대 영양소다. 우리는 일상에서 쌀·보리·밀·옥수수 등 여러 곡물을 재료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곡으로 인식되는 쌀 외에 보리·밀·옥수수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최수혁·이시온·원지민(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국립농업박물관을 찾아 탄수화물에 대해 알아봤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국립농업박물관의 기획전 ‘탄수화물 연대기’는 보리·밀·옥수수 등 친숙한 곡물을 통해 광복 이후 식문화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세대별로 곡물에 얽힌 기억과 가치를 재조명하는 전시다. 보리·밀·옥수수와 관련된 기록, 광복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으며 달라진 세 곡물의 의미와 가치, 오늘날 탄수화물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대 식문화의 흐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시온·원지민·최수혁 학생기자는 국립농업박물관 전시기획팀 윤지은 학예연구사(이하 학예사)와 함께 ‘탄수화물 연대기’를 둘러봤다.
“우리가 매일 무엇을 먹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소중 학생기자단 여러분처럼 많은 사람들이 쌀이나 밀·옥수수·콩·귀리(오트밀) 등 다양한 곡물이 포함된 음식을 먹을 거예요. 이들 곡물에는 탄수화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탄수화물이 담긴 익숙한 곡물들을 통해 우리 식문화의 변화를 소개하고 싶은 목적에서 이번 전시를 준비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농업 지침서 『농사직설』.
보리·밀·옥수수는 쌀과 함께 인류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의 주요 공급원이다. 인류가 탄수화물을 주식으로 섭취하기 시작한 역사는 농경의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길지만, ‘탄수화물 연대기’에서는 지난 100년간 우리나라 식문화를 중심으로 보리·밀·옥수수에 대해 알아본다.
이에 앞서 조선시대 세종의 명에 따라 1429년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업 지침서인 『농사직설』을 살펴봤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맞는 농사법을 정리한 책으로, 보리·밀·벼 등 주요 곡물의 파종 시기와 밭갈이, 저장 방법 등이 담겨 조선 초기에도 보리와 밀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소비됐음을 알 수 있다.
“『농사직설』에는 ‘보리와 밀은 신곡(新穀)과 구곡(舊穀) 사이를 잇대어 먹는 것이어서, 농가에서 가장 긴요하게 여기는 곡식이다’라는 구절이 등장해요. 작년에 수확한 곡식인 구곡이 다 떨어져 가고, 신곡은 아직 수확하기 전이라 쌀이 없을 때 보리와 밀을 먹는다는 의미죠.”

윤지은(맨 왼쪽) 국립농업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전시 ‘탄수화물 연대기’에 대해 설명했다.
반면 아메리카 대륙이 고향인 옥수수는 임진왜란 전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식재료다. 1690년 조선의 통역 기관인 사역원에서 편찬한 중국어 학습서 『역어유해』를 보던 소중 학생기자단의 눈에 ‘옥슈슈’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이는 오늘날 옥수수라는 이름의 가장 이른 기록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조선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주요 탄수화물 공급원이었던 보리·밀·옥수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도시화 및 산업화 등 사회 변화가 급격했던 근현대에 보리·밀·옥수수의 위상 및 소비 형태 변화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먼저 보리 하면 떠오르는 보릿고개가 있다. 쌀이 부족해지는 늦봄부터 보리를 수확하기 전인 초여름까지의 기간이다. 보릿고개는 밥을 배불리 먹기 힘들었던 어려운 시절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리가 한때 쌀과 함께 우리나라의 주곡의 지위를 지닌 곡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주도해 보리 혼식을 장려하는 운동이 추진되던 1970년대 사용된 보리쌀 포장 봉투.
정부는 1970년대 후반 통일벼가 보급되고 쌀 자급이 이뤄지기 전까지 식량난 해소와 자급률 향상을 위해 보리 품종 개발과 재배 기술 보급을 추진했다. 전시실에는 1963년 정부에서 발간한 보리 신품종 홍보물이 있었다. 다수확 품종으로 개발된 보리 신품종 ‘부흥’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또 보리의 소비와 활용도 장려했다. 1974년 식생활 개선과 식량 자급을 목표로 발간된 책자를 살펴보니 보릿가루를 이용해 국수·만두·빵·과자·떡 등을 만드는 조리법이 수록돼 있었다. 하지만 쌀 자급이 이뤄진 뒤, 보리는 쌀·밀에 비해 가공이 어렵고 식감이 거칠다는 단점 때문에 소비가 감소했다.
현대 한국인의 제2의 주곡인 밀의 경우,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생산량이 적어 밀가루값이 비싸 특별한 때가 아니면 먹기 어렵다는 내용의 고려시대 기록이 있을 정도로 밀은 일상적인 식재료와는 거리가 멀었다.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미국이 식량 원조의 일환으로 밀과 밀가루를 대량 공급하면서, 밀은 한국인의 식생활에 주요 식재료로 급부상했다. 원조받은 밀은 국내 제분공장에서 가루로 가공돼 배급됐으며, 쌀과 보리가 부족했던 시기에는 밀가루로 수제비와 칼국수 등을 만들어 먹었다. 전시된 1950~60년대 밀가루 포대들의 표면에 적힌 “미국 국민이 기증한 밀을 한국에서 제분함(Milled in Korea from wheat donated by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문구를 통해 미국에서 원조받은 걸 알 수 있다.

1950~60년대 쓰였던 미국 원조 밀가루 포대. 미국의 밀가루 원조는 우리나라 식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제분업도 성장했다. 국내 제분회사들의 밀가루 봉투에는 곰·독수리 등 동물이 그려진 경우가 많다. “문맹률이 높던 시절에는 글자를 모르더라도 밀가루 종류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기억하기 쉬운 동물이나 식물 이름으로 상표명을 정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무궁화표’는 우리나라에서 상표권 등록이 가장 오래된 밀가루 상품명 중 하나예요. 이어 곰표·독수리·공작 등 다양한 밀가루 상품명이 등장했죠.”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정부는 국가 재건과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곡물 생산량 증가 정책을 펼치는 것은 물론, 혼식과 분식 장려 운동도 함께 주도했다. 혼식은 보리와 쌀을 섞어 먹는 것을, 분식은 밀가루 음식을 먹는 것을 뜻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던 쌀은 덜 먹게 하고, 밀·보리 등 다른 곡물은 더 먹게 하는 게 혼분식 장려운동의 핵심이었다. 보건사회부가 1970년대 제작한 혼분식 장려 포스터를 보면 당시 시대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혼식을 하는 사람이 쌀만 먹는 사람에 비해 훨씬 건장한 체격으로 그려져 혼분식 실천의 필요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당시 정부가 추진한 쌀 절약과 잡곡 소비 장려 운동의 사회적 분위를 반영한다.
이렇게 밀가루의 대량 공급과 혼분식 장려 운동으로 밀가루 음식이 생활화되면서 조리가 간편한 국수의 소비도 늘어났다. 시온·지민·수혁 학생기자는 식당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수틀을 살폈다. 또 일제강점기에 전해졌으며 절미 운동의 일환으로 가정에서도 섭취가 권장되던 건빵, 1963년 국내 최초로 출시된 ‘삼양라면’ 등 밀가루로 만든 여러 음식이 전시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밀은 우리 식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곡물로 자리 잡았다.

혼분식을 한 사람이 쌀밥만 먹은 사람보다 훨씬 튼튼한 외형으로 묘사된 혼분식장려 포스터.
옥수수는 앞서 우리나라에 16세기 임진왜란 전후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옥수수는 쌀이나 보리를 재배하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며, 곡식의 낟알을 찧어 껍질을 벗기는 도정 등 별다른 가공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농사 환경이 척박한 강원도 등 산간 지역에서 식량 대용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밀과 함께 미국의 원조 곡물로 대량 공급된 옥수수는 밥을 지을 때 섞거나 죽으로 끓여 먹었으며, 가루로 빻아 빵을 만들어 먹는 등 구황식품의 역할을 했다. 전시실에는 1960년대 농사원교도국에서 배포한 옥수수 시루떡 리플릿이 있었다. “옥수수떡은 맛이나 영양가에 있어서도 쌀떡보다 떨어지지 않는다”는 홍보 문구와 함께, 옥수수로 시루떡을 만드는 과정을 그림으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옥수수를 보다 널리 활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천수답 전전환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1970년대 안내문도 눈에 띈다. 천수답(天水畓)은 저수지나 별다른 관개시설 없이 빗물로만 농사를 짓는 논을 말한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꾸준히 높은 수확량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천수답을 밭으로 전환하고, 옥수수 등 밭작물을 심어 안정적 생산을 도모하자는 내용의 안내문을 배포했다. 1970년대 후반 식량 자급을 달성한 이후에는 맛을 중시하는 식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과거에 비해 차지고 단맛이 강한 옥수수 품종의 인기가 커지고, 주식보다는 간식과 가공식품의 재료가 됐다.

윤지은(맨 왼쪽) 학예연구사가 보리·밀·옥수수를 중심으로 광복 이후 우리나라 식문화의 변화상을 설명했다.
“현대의 옥수수는 인간의 식량 외에도 동물의 사료나 의약품의 재료, 천연 에너지 연료(바이오 연료)로도 쓰입니다. 또 옥수수는 물이 적고 기온이 높은 기후에서도 잘 자라요. 재배하기 쉽고 쓰임이 매우 다양하기에 미래의 식량으로도 불려요.”
식량 자급을 이룬 1970년대 후반 이후 정부의 정책 방향은 식량 증산에서 주곡의 자급 유지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곡물 생산 방향도 수확량 증가가 아닌, 소비자 중심의 품질 개선으로 바뀌었다. 양보다 질을 중시하고, 끊임없이 새롭고 다양한 음식을 추구하는 식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우리의 밥상은 단순한 식생활의 공간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 요소가 됐다.
“탄수화물은 기분 좋은 단맛과 함께 포만감을 주는 영양소입니다. 동시에 생존을 위한 에너지원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곡물 농사에 집중해 탄수화물을 확보했고, 탄수화물이 식사의 중심에 있었다고 볼 수 있어요. 현대에 접어들며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수확량이 많은 벼 신품종이 만들어지면서 쌀 생산량도 늘어나 모두가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점차 개인별 취향을 반영하여 식문화가 다양화됐어요. 따라서 탄수화물 외에도 여러 영양소를 섭취하게 되면서 점차 식사에서 탄수화물의 비중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여요.”

‘탄수화물 연대기’에서 탄수화물과 관련된 과거의 여러 뉴스와 영상을 살펴본 원지민·이시온·최수혁(왼쪽부터) 학생기자.
실제로 통계청의 2024 양곡소비량조사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양곡 소비량은 1964년 185.5kg과 비교했을 때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4년에는 64.4kg으로 1/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에는 탄수화물이 얼마나 들어있을까. 또 어떤 곡물을 통해 탄수화물을 섭취했을까. ‘탄수화물 연대기’ 전시를 통해 배운 사실과 함께 생각해보자.
탄수화물 연대기
장소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249-7 국립농업박물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마감 오후 5시, 매주 월요일 휴무)
관람료 무료
아이랑GO를 배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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