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마오쩌둥의 2인자, 20세기 중국의 '마지막 신하' 저우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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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언라이
천젠 지음
이성현 옮김
아르테
1068쪽. 흔치 않은 두께다. 그도 그럴 게 20년 걸린 저작이 아닌가. 저자가 집필을 시작한 건 2004년. 미국 버지니아대 동료 교수 멜빈 레플러의 권유가 있었다. 1952년 중국 상하이 태생으로 화동사범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1986년 미국으로 건너와 서던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중국 현대사에 밝았다. 레플러는 저자에게 6주 정도면 짧은 저우언라이 전기를 쓸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1975년 1월 제4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전체 회의에서 연설하는 저우언라이 [사진 Imaginechina Limited / Alamy Stock Photo]
이미 많은 자료 수집과 인터뷰까지 끝낸 저자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지만, 곧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저우는 중국 현대사의 모든 주요 장면에 등장한다. 또 지극히 복잡한 인물로 어느 한 마디로 평가할 수 없었다. 2024년에야 책(영문판)이 나온 이유다. 저우의 삶은 두 부분에서 관심을 끈다. 우선 ‘인민의 총리’와 ‘권력의 부역자’란 상반된 평가 속 저우의 본모습은 무엇인가다.
1976년 4월 초 톄안먼광장에 중국의 일반 시민 수만명이 그해 1월 별세한 저우언라이 총리를 추모하며 모여 있는 모습.[사진 Universal History Archive/ 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1994년 저우 전기를 쓴 한쑤인은 저우의 흠을 찾기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문혁의 광풍을 몰고 온 마오쩌둥 사후 정통성 위기에 봉착했던 중국 공산당이 저우를 대안의 인물로 내세운 영향이 컸다. 1973년 저우를 비판한 기록은 파기됐고 저우는 완벽한 인격체로 그려졌다. 2000년대 들어 저우의 그늘을 파헤친 저작이 나온다. 가오원첸은 『만년의 저우언라이』에서 저우의 도덕적 청렴성에 의문을 던진다.
1949년 10월 1일 톈안먼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념식에 참석한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사진 Sovfoto / 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위창겅은 『저우언라이 평전』에서 공산당 특무로 활약한 저우의 냉혹함을 고발한다. 『마오 이후의 중국』으로 유명한 역사가 프랑크 디쾨터는 한 기록에서 저우를 마오의 ‘충실한 개’로 표현했다. 저자 역시 저우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동료가 배신하자 그의 두 살배기 아들을 포함해 일가족 아홉 명을 몰살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문혁 기간엔 자신의 양딸과 친동생 체포를 수용했다.
또 양심을 거스르며 마오가 미워한 류사오치 국가주석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류의 아내 왕광메이는 끝내 저우를 용서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러나 역사가 곤경에 처한 정치인이자 덫에 걸린 사람으로서 저우를 용서할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위대한 조타수 마오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격렬한 폭풍 속으로 몰고 갔을 때, 일등 항해사 저우는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고 평가한다. 그 결과 중국은 살아남았고 느리고 고통스러웠지만 전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50년대 초 양딸 쑨웨이스와 함께한 저우언라이와 덩잉차오 부부.[사진 Historic Collection / Alamy Stock Photo]
두 번째는 왜 그렇게 다재다능한 저우가 마오에 눌려 한평생 2인자 꼬리를 달고 살았냐는 문제다. 단지 권력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저자는 저우가 양어머니에게서 배운 불교적 삶의 태도와 서당 교육을 통해 습득한 유교적 윤리를 내면 깊숙이 갖고 있어 절대적 충성과 결코 지도자의 자리를 탐내지 않는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설명한다.
나름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저우는 마오보다 다섯 살 어리지만, 혁명 초기엔 상급자였다. 마오가 앞선 건 1935년 1월 준이(遵義)회의 이후였는데 저우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저우의 마음 속 마오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듯싶다. 1945년 중국 공산당 7차 당대회 개회식 연설자 7명 중 저우는 “마오쩌둥 동지 만세!”를 외친 유일한 사람이었다.
1972년 2월 베이징공항에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부부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환영하는 모습.[사진 AFP / Getty Images]
“만세! 만세! 만만세!”는 황제를 향한 신하의 외침이 아니던가. 저우는 1966년 연설에선 ‘말년의 정치적 절개를 지키는 것’을 주제로 마오에 대한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기도 한다. 병상에 누워 죽는 날까지 자신에 대한 마오의 의심을 풀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기울였던 저우의 모습에선 연민의 정까지 느껴진다.
1945년 8월 28일의 모습. 왼쪽부터 장즈중, 마오쩌둥, 패트릭 J 헐리, 저우언라이. 퍼블릭 도메인에 속하는 이미지.
앞으로 이 책을 능가할 저우언라이 평전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중국이 2010년대 들어 자료 열람을 불허하고 있어 연구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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