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선두의 폭죽, 전남도립미술관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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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세로 2m, 가로 8m에 이르는 대형 화폭이 밤하늘처럼 펼쳐진 가운데, 불꽃놀이 때 터지는 폭죽 대신 초록 풀과 할미꽃·찔레꽃·등꽃이 보입니다.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에서 개인전 ‘색의 결, 획의 숨’(3월 22일까지)을 열고 있는 화가 김선두(67)는 꽃 그림에  ‘싱그러운 폭죽’이라 제목을 붙였습니다. “꽃이야말로 대지가 쏘아 올리는 폭죽”이라고 말하는 그는 먹과 채색을 도구로 찰나에 반짝이고 사그라지는 삶을 표현합니다.

김선두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해온 중견 작가입니다. 수묵을 기반으로 작업하지만 전통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한국화를 현대 회화로 풀어내는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지금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는 한 예술가의 개인전을 넘어서 우리 시대 지역 미술관의 역할, 그리고 한국화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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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두, ‘느린 풍경-유정길’, 2021, 장지에 분채, 200x278㎝. [사진 전남도립미술관]

그의 작업은 종종 상업 갤러리에서 전시된 적 있지만, 미술관 전시는 그가 작가로서 고민하며 쌓아온 이야기를 폭넓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릅니다. 고향(전남 장흥)에 대한 기억과 남도의 자연 풍경에서 출발한 ‘남도 시리즈’를 비롯해 ‘낮별’, ‘느린 풍경’ 등 주요 연작을 한자리에서 볼 기회는 서울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뜻밖에 지방에서 만난 양질의 특별한 전시입니다.

김선두의 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전통 한지 위에 오랜 시간을 쌓아 올려 완성한 맑고 깊은 ‘색감’입니다. 작가 설명에 따르면 이런 색채는 “물감을 40~50차례 반복해 쌓아 올려 얻은 것”입니다. AI(인공지능)로 만들어낼 수 없는 노동과 시간의 힘이 거기 있습니다. 또 중요한 요소는 붓질입니다. 그의 작품은 모두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붓을 잘 쓰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줍니다. 특히 낡은 철조망을 그린 작품은 “수묵화의 본질은 필법에 있다”는 그의 믿음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그는 또 화폭에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는데요, “힘의 완급을 조절하며 리듬을 타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작품 얘기인 동시에 삶에 대한 그의 깨달음을 전합니다.

올해 개관 5주년을 맞는 전남도립미술관은 갈수록 질을 높여가는 지역 미술관의 선두에 있습니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마나 모아나: 신성한 바다의 예술’을 유치해 지역민에게 소개했고, ‘래리 피트먼’ ‘오지호와 인상주의’ 등의 전시를 열어 미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김선두 전시 역시 전라남도의 독자적인 호흡으로 지역 미술관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노력으로 읽혀 더욱 반갑습니다. 예술가도, 지역 미술관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그 존재가 또렷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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