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변호사 국가' 미국 '엔지니어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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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왕 지음
우진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미국 실리콘 밸리의 중국 전문가인 저자는 최근의 미-중 갈등이 우스꽝스럽다. 중국계 캐나다인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같은 기간 살아본 입장에서 두 나라 만큼 닮은 국가는 없다고 확신하는 까닭이다. 둘 모두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성공한 기업가를 존경하며, 부를 향한 치열한 경쟁 속에 “한탕주의 사기꾼”들이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정반대 형태로 기능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오늘날 미국과 중국을 설명하기에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다. 저자는 대신 중국을 “엔지니어 국가”, 미국은 “변호사 국가”로 정의한다. 2002년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이었고 그런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면 현재까지 최근 미국 대통령 10명 중 절반이 법학을 전공했고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공대 출신은 허버트 후버와 지미 카터뿐이다.

미국의 성조기, 중국의 오성홍기와 함께 CPU 반도체 칩이 놓여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공학자 출신 기술 관료들이 지배하는 중국은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특징지어지며, 미국은 건설을 촉진하기보다는 막는 데 더 능숙한 변호사들이 지배한다. 사실 이러한 구분이 그다지 새로운 통찰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간결한 논리 전개와 설득력 있는 예시로 진부함을 극복한다.
2008년 중국과 미국에서 비슷한 길이(약 1200km)의 고속철도 건설이 시작됐다. 베이징-상하이 노선과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노선이다. 중국은 360억 달러를 투입해 2011년 개통했고, 이후 10년간 13억5000만명이 이용했다. 미국의 경우 노선의 ‘첫 번째 구간’만 2030~2033년 운행을 시작할 ‘계획’인데, 총 건설비용은 1280억 달러까지 치솟았고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른다.
지난 세기 미국은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와 황금색으로 빛나는 멋진 다리, 원자폭탄과 달 탐사까지 초강대국으로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인들은 과거에 이룩한 찬란한 문명의 폐허 속에서 살고 있으며 증축이나 확장은커녕 유지 관리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달 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해 미국 뉴욕의 맨해튼 모습. [AFP=연합뉴스]
저자는 그 이유를 법률가들에게서 찾는다. 지난 세기 중반 미국에 각종 사회·환경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감시인을 자처한 이들이 온갖 소송으로 딴죽을 걸어댄 것이다. 미국의 변호사 수는 인구 10만 명당 400명으로 유럽 평균의 3배에 달한다. 그렇게 법률가 중심 국가가 되면서 미국은 결과는 나 몰라라 절차만 따지고, 변호사를 하인처럼 부리는 부자들만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이에 반해 공학자 중심 국가인 중국은 기술 강국이 된 지금도 제조업(아무리 저사양 산업일지라도) 사수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애플 CEO 팀 쿡의 한마디가 그것을 웅변한다. “금형 기술자를 한자리에 모은다 치면 미국에서는 회의실 하나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국이라면 축구장 여러 곳을 채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말 중국 남서부 윈난성 쿤밍의 차량 기지에 초고속열차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미국의 문제를 짚고 있지만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중국이다. 미국과 비교되는 중국의 비약적 성장 이면에 숨은 병리들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구이저우성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량 100개 중 45개가 있고, 공항은 11곳이며 3곳이 추가 건설 중이다. 이같은 경이적인 인프라에도 지역 주민들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맨해튼이라는 톈진의 빈하이 금융특구는 빈 상가들이 그득하고, 선전의 화창베이 전자상가에는 전자부품보다 화장품을 더 많이 팔 때도 있었다.
정확한 수요 예측보다 일단 만들고 보자는 사고이다 보니, 누가 하니 나도 한다는 ‘면자(面子)공정’, 외관 치장에만 매달리는 ‘형상공정’, 부실공사로 무너지는 ‘두부공정’이 허다하다.
미사일 공학자가 주도한 ‘한 자녀 정책’은 심각한 성비 불균형과 고령화를 낳았고, ‘코로나 봉쇄 정책’은 공학적 통제가 어떤 광기로 흐를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같은 재앙은 부자나 창의적 젊은이들이 중국을 탈출하는 ‘룬(潤)’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저자는 개인의 권리 존중과 다원주의가 확보되지 않는 한 중국이라는 공학 국가의 미래는 밝지 않다고 진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법률 국가인 미국의 강점이다. 저자는 결론처럼 말한다.
“두 초강대국이 각자의 단점들을 인정한다면 세상이 얼마나 나아질지 상상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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