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면역력 강화? 몸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는 면역 체계와 그 과학[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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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면역 수업
존 트라우즈데일 지음
김주희 옮김
판미동

마음의 평정을 지키려 눈과 귀를 닫게 만드는 말들이 있다. “면역력 강화” 같은 모호한 말도 그렇다. 거센 힘일수록 원하는 대로 조율하기 어렵다. 면역 반응이 활발해질수록 몸에서 염증은 폭주하고, 조직은 붓고, 신체 곳곳이 손상된다. 병원체가 유발하는 면역 반응 자체가 목숨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다. 또 많은 사람이 가끔 불편한 정도의 자가면역 증상을 알게 모르게 겪는데, 삶과 일상을 위협받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다행히 면역"력"은 생물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관용어에 불과하고, 이를 강화한다는 상품들 또한 대체로 무효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재앙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면역력 강화”가 마케팅 키워드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불안과 공포에서 한 방으로 해결할 방안을 원하는 주술적 사고가 한 원인일 텐데, 이는 인류의 뿌리 깊은 습성이다. 다른 원인은 면역 현상을 간단히 이해하기 어려워 오랫동안 대충 뭉뚱그려 얘기해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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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일, 파키스탄 카이베르 파크툰크와(KPK) 주 페샤와르에서 보건 의료 종사자가 가가호호 방문 예방 접종 캠페인 중 어린이에게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워낙 복잡해 지금도 밝혀내지 못한 의문들이 많기는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래 면역학은 급격한 변화를 거듭해 왔다. 매년 교과서(!)가 달라지기 때문에 의대 앞 중고서점들이 면역학 교과서는 받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제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면역 현상의 폭과 깊이를 소개하는 책들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존 트라우즈데일의 『면역 수업』은 대중 과학서와 전공 교과서 사이를 잇는 가교를 자임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인 지은이는 50여 년 간 활동해온 면역유전학자다. 논문이 아닌 책으로는 첫 작품이다. 원서의 부제(A Guide to the New Science of Our Immune System)가 책의 성격을 확연히 드러내는데, 우리 몸의 면역 현상과 체계에 대한 새로운 과학을 종합적으로 소개한다. 책 내용을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면역 체계는 감염을 막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의 모든 영역에 걸쳐 (중략) 관여하며, 심지어 뇌의 신경 연결에도 관여한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너무나 당연한 사실에도 주목한다. 면역 체계는 장과 피부에 있는 수십 억 개의 외부 미생물에 무관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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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면역수업'의 저자 존 트라우즈데일. [사진 판미동]

1부의 10개 장은 면역 체계를 소개하고 기본 작동 원리를 설명한다. 2부의 11개 장은 백신, 임신, 노화, 암, 신경면역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식물과 다른 동물들의 면역을 소개하는 비교면역학에 할애한 장도 있고, 음식과 영양이 면역 체계와 주고받는 영향을 해설한 장도 있다. 2부의 각 장은 그 주제에만 집중한 대중 과학서들만큼 풍부하지는 않지만, 면역 현상 전체에서 특정 주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두드러진다. 성공과 낙관만 강조하지 않고, 실패와 무지도 고백하고, 과도한 낙관을 경계하면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면역 작용 덕분에 문신이 유지된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슬쩍 언급한다.

아쉽거나, 호불호가 갈릴 지점들이 있기는 하다. B세포가 생식세포가 아닌 체세포인 주제에 자체적으로 유전자 재조합을 벌인다는 발견 같은 대사건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조금은 더 드라마틱하게 제시하면 독자의 집중력을 살리기에 좋았을 성싶기는 한데, 달리 생각하면 드라마틱하게 말할 수 있는 소재가 면역학에는 너무나 넘쳐 난다.

전문 용어의 기원을 해명했더라면 일반 독자들이 느낄 위압감이 줄었을 성싶은 대목들도 있다. 예컨대 B세포는 이제는 골수(bone marrow)에서 나온다고 해서 B세포라고 부르는 셈이고, T세포는 흉선(가슴뼈 뒷쪽에 있는 기관, Thymus)에서 성숙한다고 해서 T세포라고 불린다. 책 표지의 구절과 달리 “일생에 한 번”이 아니라 한 세대에 한 번씩은 개정판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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