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리말 바루기] ‘걷잡다’와 ‘겉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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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연결
본문
이미 번져 버린 불길을 바라보면 허망해진다. 이때 우리는 “걷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먼발치에서 불길의 크기를 눈대중으로 가늠할 때는 “겉잡아도 이 정도는 되겠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걷잡다’는 잘못돼 가는 형세나 흐름, ‘겉잡다’는 대상에 대한 ‘판단’과 관련해 쓰인다.
그렇지만 ‘걷잡다’와 ‘겉잡다’는 똑같이 [걷짭따]로 발음된다. 발음이 같다 보니 혼동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ㄷ’ 받침의 ‘걷잡다’에는 ‘거두어 붙잡다’는 기본 의미가 들어 있다. “한 방향으로 치우쳐 흘러가는 형세를 붙들어 잡다” 또는 “마음을 진정하거나 억제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주로 산을 삼킬 듯 번지는 불길, 비 오듯 쏟아지는 눈물, 급격하게 변하는 경제 상황처럼 통제를 벗어나려는 대상을 바로잡거나 가까스로 억제할 때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 ‘걷잡다’는 거의 ‘없다’ ‘못하다’ 같은 부정어와 함께 쓰인다. “걷잡을 수 없는 불길.” “걷잡지 못하는 지경에 빠져버렸다.”
‘ㅌ’ 받침의 ‘겉잡다’는 ‘속’의 반대말 ‘겉’과 ‘잡다’가 결합한 말이다. ‘겉’을 잘 봐야 한다. 이 낱말은 겉으로 보고 대강 짐작한다, 헤아린다는 뜻을 갖게 됐다. 어떤 대상을 정밀하게 측정하거나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양이나 정도를 가늠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이나 사실의 표면적인 정보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뜻이다. 다음처럼 쓰인다. “그 일은 겉잡아도 사흘은 걸린다.” “겉잡아 말하지 말고.” “겉잡아도 쉰은 돼 보인다.” 그리고 ‘걷잡다’와 달리 ‘없다’ 같은 부정어와 굳이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걷잡다’와 ‘겉잡다’는 이렇게 구별된다. 상황이 마구 번져 ‘거둬(걷)’들여야 할 때는 ‘걷잡다’, 겉만 보고 어림잡을 때는 ‘겉잡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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