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황금시대' 연 다카이치…고이즈미·아베 잇는 장기집권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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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일본 자민당 본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카이치 황금시대’의 막이 올랐다.

8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했다. 1996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후 자민당이 얻은 최대 의석수(296석, 2005년)를 넘었고, 개헌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석(310석) 까지 차지한 316석을 확보했다.

다카이치 총리 개인의 인기를 내세워 국민으로부터 압도적인 신임을 얻은 셈이다. 당분간 국정 선거가 없기 때문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5년 5개월)나 다카이치 총리가 계승자를 자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7년 8개월)의 뒤를 이은 장기 집권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당신의 한 표를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5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다카이치 사나에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글을 올렸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선 대통령제처럼 직접 총리를 선출할 수 없다. 하지만 자민당 총재인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에 대한 신임 투표를 촉구하는 이례적인 호소를 한 것이다. 이 글에는 21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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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일본 가나가와현의 자민당 선거 게시판에 이 지역구 후보자 대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이러한 다카이치 총리의 전략은 중의원 해산을 공표한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에서 해산 이유에 대해 “다카이치 사나에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적합한지(를 묻기 위해)”라고 설명하면서 16일간의 초단기 선거전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자민당은 선거 기간 중 다카이치 총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인지도가 낮은 후보가 출마한 지역구에선 후보자 본인이 아닌 다카이치 총리의 포스터만 게시할 정도였다.

유세장에 모인 남녀노소가 ‘사나에’라고 쓰인 부채를 들고 열광하는 등 이번 선거전은 연예인을 향한 ‘오시카쓰(押し活·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활동)’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유세 동영상이 SNS를 통해 널리 확산되면서 수도권은 물론 야당의 텃밭에서도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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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일본 도쿄에서 눈이 내리는 가운데 투표장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EPA=연합뉴스

첫 여성, 비세습...'다카이치 열풍'으로 압승  

다카이치 총리의 폭발적인 인기에 대해 요시다 도루(吉田徹) 도시샤대 교수는 “일본 첫 여성 총리이자 비(非)세습 정치인이라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이라며 “무당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선거전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평범한 맞벌이 샐러리맨 가정에서 자랐다”고 강조하며 ‘서민파’ 이미지를 부각했다.

“나의 개혁을 지지하느냐”고 물으며 해산을 단행해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는 점은 2005년 고이즈미 전 총리의 ‘우정해산’과도 유사했다. 2005년 총선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여당이 중의원에서 3분의 2 의석을 획득한 선거였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총리가 선거의 주인공이 되면서 야당은 주목 받지 못했다. 해산 전날 급히 결성된 제1야당인 중도개혁연합은 대패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총리 시절에 이탈했던 핵심 지지층도 자민당으로 돌아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급성장했던 국민민주당과 참정당 등 야권 보수정당은 현상 유지와 소폭 상승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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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일본 가나가와현에 설치된 후보자 게시판. 자민당 후보자 포스터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얼굴 사진이 나란히 담겨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외국인 정책이나 안보3문서 개정 등 ‘다카이치 색깔’을 지닌 정책 추진에 속도감이 붙을 전망이다. 중·일갈등과 최근 호전된 미·중관계 속에서 한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오는 22일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에 관해 “(다카이치 총리가 과거 주장했던) 장관급 파견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예년과 마찬가지로 정무관급을 파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아베처럼 장기 집권? 관건은 감세  

요시다 교수는 “현재 자민당 내에는 다카이치 총리의 라이벌이 없다”며 “내각에서 큰 실점이 없는 한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관건은 감세 실현 여부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여당으로는 처음으로 “2년간 식료품 소비세 제로”라는 감세 공약을 내세웠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6일 감세 도입 시점에 대해 “내년도(2026년4월~2027년3월)를 목표로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이 발언에 대해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시적으로라도 감세를 했을 경우, 다시 세금을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약으로 내건 이상 실현하지 않으면, 지지율 급락을 피할 수 없다.

나가타초(총리 관저와 국회 등이 위치한 정치 중심지)에선 다카이치 총리의 독단적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는 해산 시점 등을 포함해 중요 사안을 주변과 상의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비세 감세는 자민당 내에서도 사회복지비용이 부족해진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그러나 ‘정책통’을 자임하는 다카이치 총리는 밤에 공저에서 자료를 꼼꼼히 읽고 혼자 판단하는 스타일로, 장기 집권했던 고이즈미 전 총리와 아베 전 총리가 비교적 주변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란 평가다. 또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같은 돌발 발언이 나올 수 있는 '불안정성'도 약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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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차 아베 신조(앞줄 왼쪽 둘째) 내각에서 입각한 다카이치 사나에(앞줄 맨 오른쪽) 당시 총무상.EPA=연합뉴스

또 고이즈미 전 총리는 우정 민영화, 아베 전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일부 행사 등 반드시 이루고 싶은 과제가 명확한 것에 반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카이치 총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 측면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앞으로 개헌에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있다. 자민당과 연립을 구성한 일본유신회는 자민당보다 '평화헌법'의 상징인 9조 개정에 적극적이다. 양당은 지난해 11월부터 9조 개정 등을 포함한 개헌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장기 집권하면 야스쿠니 참배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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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다카이치 사나에 현 총리. 교도=연합뉴스

총리가 된 후 보류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당분간 하지 않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8일 후지 TV 인터뷰에서 참배와 관련해 “과거 아베 총리가 참배했을 때 미국과 사전 조율을 거쳤는데도, 참배 후 항의가 들어왔었다”며 “먼저 동맹국과 주변국에 제대로 이해를 구하겠다.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요시다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남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일·중 갈등을 꺼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이점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 아베 전 총리 둘 다 재임 기간 중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한 만큼, 다카이치 총리도 장기 집권할 경우 참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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