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분쟁 지역 닿았을까, 산시로의 ‘평화 메시지’[알베르토의 밀라노 코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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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의 밀라노 코레아
개회식에서 립싱크 논란에 휩싸인 머라이어 캐리. 로이터=연합뉴스
올림픽 개회식은 결코 스포츠만의 영역이 아니다. 음악과 상징 그리고 전 세계의 기대감이 뒤섞여 폭발하는 거대한 무대다. 이번 개회식은 이탈리아가 얼마나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며, 얼마나 깊은 문화적 유산을 가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논란도 있었다. 미국 가수 머라이어 캐리(사진)의 립싱크 논란이 화제가 된 가운데 이탈리아 내부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쟁은 국민 가수로 불리는 라우라 파우시니가 부른 이탈리아 국가 ‘마멜리 찬가’였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압제에 맞서 싸우며 “우리는 죽을 준비가 됐다”는 비장한 가사가 반복되는 이 곡을 파우시니가 지나치게 팝 디바스럽게 해석했다는 것이 주된 비판이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국가는 군가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파우시니는 이를 마치 산레모 가요제의 피날레 곡처럼 변질 시켰다”고 꼬집었다. 음을 늘어뜨리며 고음에서 화려하게 굴리는 기교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개인의 가창력 자랑을 위한 수단으로 소모했다는 것이다. 반면 디애슬레틱은 “세계적인 팝 아이콘 파우시니가 국가를 열정적으로 불렀다. 감히 말씀드리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 중 하나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정이 담겨있다”고 호평했다.
개회식에서 국가를 부른 파우시니. AP=연합뉴스
결국 이번 논란은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쇼가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조상들의 피와 눈물을 기억하려는 이탈리아인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향한 것인가이다. 내 속내를 말하자면 국가는 모름지기 축구 경기처럼 우렁찬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엔 기교를 너무 부렸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파우시니는 한국의 조용필 같은 국민 가수라 그렇게 단정 짓지도 못하겠다. 그 정도 거장이라면 국가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세계에 알려야 할 책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필자의 귀에는 우렁찬 맛이 모자랐을지언정 파우시니는 비장한 선율에 현대적인 생동감을 불어넣으려 사투를 벌였다고 본다. 역시 국가는 이탈리아가 최고라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으니 감동적이었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이보다 더 감동적인 순간은 밀라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렐리 트램이 상징적인 장소인 스포르체스코 성, 산 로렌초 기둥, 스칼라 광장을 지나 산시로에 도착하는 영상이 나올 때였다. 트램에서 내려 밀라노의 신전 산시로에 발을 내디딘 노신사는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었고, 트램 운전사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모터사이클 챔피언 발렌티노 로시였다. 산시로는 마치 호나우두나 마르코 반바스텐이 골을 넣은 듯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튀니지계 이탈리아 가수 갈리.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는 언어로도 변주를 보여주었다. 튀니지계 이탈리아 가수 갈리는 어린이를 위한 동시 ‘프로메모리아(기억해야 할 것)’를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로 낭독했다.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대로서 평소 평화와 공존을 노래해 온 갈리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울림이 컸다. 그가 나직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시를 읽어 내려가자, 화려한 조명으로 들떴던 산시로에는 이내 숙연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 정적 속에서 그가 전한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명징했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씻고, 공부하고, 놀고… 밤에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눈을 감고, 잠을 자고, 꿈꿀 꿈을 꾸고…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들이 있다. 낮에도, 밤에도, 바다에서도, 땅에서도. 예를 들어 전쟁.’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등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벌어지는 지금 이탈리아는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알베르토 몬디.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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