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직도 다 이해 못하는, 자꾸 읽으며 감탄하는...맏딸 호원숙 작가가 말하는 박완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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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 1987년의 모습이다. 신간 '쥬디 할머니'에 작가 사진으로 수록됐다. [사진 제공 호원숙]
얼마 전 동생이 가족 앨범을 정리하다가 나온 사진이라며 보내주었다. 여태껏 보지 못한 어머니 사진인데 자꾸만 눈에 밟혔다. 1987년 가을 동생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청계산에 갔을 때라고 했다. 50대 중반의 어머니는 쓸쓸해 보이기도 했고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긴 듯도 했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당시 쓰셨던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고 문득 '저문 날의 삽화'가 생각났다.
그 사진이 15주기에 나온 단편 선집 『쥬디 할머니』의 작가 사진이 되었다. 산뜻하고 동화 속 같은 표지 속에 담긴 10편의 소설은 31명의 소설가가 추천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 표제작을 처음 읽는 것처럼 다시 읽게 되었다. 지금 방금 쓴 것 같은 모던한 느낌을 받았고 80년대 초반에 쓰신 거라는 걸 알고 다시 놀라게 되었다.

'나목' 스페인어판 표지. [호원숙 제공]
지난해 말 칠레에서 『나목』(El árbol desnudo)의 스페인어 판이 나왔다고 보내왔다. 여태껏 국내외로 『나목』의 여러 판본이 나왔지만 표지의 그림이 특별했고 강렬하고 눈에 확 뜨였다. 오래된 나무의 결, 그 나무 곁에 피어난 알 수 없는 붉은 꽃 같은 머리칼을 흩날리는 젊은 여자의 옆모습의 그림은 누가 디자인한 걸까? 지구의 반대편 끄트머리에서 『나목』이 이렇게 탄생한 것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책을 가깝게 두고 쓰다듬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표지의 그림은 김산호 작가의 작품이었다. 그 그림을 어떻게 칠레의 출판사에서 표지로 디자인하게 된 것인지 자세한 경위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목』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내가 10대였을 때 어머니의 데뷔작을 읽었을 때의 충격과 진저리를 쳤던 이물감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어머니의 작품을 읽으며 성장하면서 늙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꺼내어 읽게 되고, 분명 읽었지만 이런 구절이 있었구나 하며 감탄하게 된다. 어머니의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슬프거나 기쁘거나 하는 감정과 함께 통쾌한 느낌이 우러나게 된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갈등 구조가 있지만 그 문장 속에서 알지 못할 힘을 얻게 된다. 그것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리운 어머니의 생애와 정신세계가 있기 때문일까?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9일 개관한 박완서 아카이브에 재현된 박완서 작가의 서재. 작가가 삶의 마지막 10여 년간 쓰던 책상과 책장이 놓였다. 우상조 기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세상이 또 변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AI(인공지능)와 대화를 하면서 물어보기도 한다. 괴테나 카프카나 플로베르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나오는데 박완서의 『미망』에 대해서는 전쟁미망인의 슬픈 이야기라고 하는 둥 오작동이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아직 학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더욱 책이라는 물성이 지닌 가치가 소중하다고 느끼게 된다. 나는 어머니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어머니 글을 읽었지만 아직도 그 비의(秘義)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글 속에서 빛나는 예지력을 발견했을 때 기쁨과 경외감을 느낀다.
박완서 아카이브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전시장 모습. 공중에 걸린 종이에 작가가 노년에 쓴 육필 일기가 보인다. 우상조 기자. .
나는 어머니가 노년에 쓴 글들을 좋아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울 때 펴보는 『그 남자네 집』에서의 너그러운 품을 좋아한다. 어머니가 스스로 참 공들여 쓴 거라고 말씀하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나는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을 아낀다(2월 25일 구리아트홀에서 15주기 추모 낭독공연이 있습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새로 개관한 박완서 아카이브에는 어머니의 서재가 재현되고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란 제목의 전시가 시작되어 노년의 일기가 일부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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