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장사천국 열려" "출퇴근 생지옥" 통근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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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금요일 퇴근 무렵 강원혁신도시 한 공공기관 주차장에 공덕(서울 마포구)·마두(경기도 고양시)·수원·인천 등 수도권행 통근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드디어 장사 천국이 열리지 않겠어요?”(강원혁신도시 음식점 사장) “출퇴근 생지옥이 펼쳐질 겁니다.”(A공공기관 김모 대리)

도시도 일반도시가 아니다. ‘혁신도시’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서울로 가는 전세버스를 대주면 공공기관 이전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 뒤 한겨울 그곳에서 뜨겁게 나오는 말들이다. 국토교통부는 당장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의 수도권 전세 통근버스를 정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 대통령의 ‘통근버스’ 질타는 느닷없는 게 아니라 수도권 일극 타파, 부동산 정상화,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의 연장선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국 혁신도시는 10곳. 지역 균형 발전과 혁신 거점 활성화를 내걸고 ‘시즌1’이 2003년부터 추진돼 16년 만인 2019년 149개 공공기관이 옮기며 마무리됐다. 그중 47곳이 한 해 220억여원을 대며 통근버스를 운영 중이다. 금요일 오후만 되면 텅 비는 도시에 현지 소상공인들은 울상이다.

혁신도시 ‘시즌2’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공공기관 331곳 직원은 44만4000여 명. 그중 상당수가 혁신도시로 내려갔거나 내려갈 예정이다. 중앙SUNDAY는 이 대통령 발언 이후 혁신도시 현장을 찾았다. 공공기관 직원과 가족, 지역주민과 소상공인, 심지어 통근버스 기사 등 수십만 명이 함께 술렁이고 있었다.

“학교도 병원도 부족한데  통근버스부터 없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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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9일 월요일 충북혁신도시의 공공기관 직원들이 통근버스에서 내려 출근하고 있다. 충북혁신도시는 수도권에서 통근버스를 이용하는 직원이 많다. 김홍준 기자

“회사 관둘 생각도 있어요.”

지난 9일 오전 충북혁신도시(진천·음성) 공용터미널 앞. B공공기관에 다닌다는 여성 두 명이 수도권발 통근버스에서 내리며 한목소리를 냈다. 충북혁신도시로 옮긴 11개 공공기관 중 10곳이 통근버스를 운영한다. 혁신도시 중 가장 높은 비율(91%)이다. 반대로 이곳 공공기관 직원의 가족동반 이주율은 50.5%로 최하위다. 미혼·독신자 등 1인 가구를 빼면 더 낮아진다. 10개 혁신도시 평균은 71.6%. 10개 혁신도시 평균은 71.6%다. 충북혁신도시는 이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 청와대에서 ‘불과’ 110㎞ 떨어져 있다. 햑신도시 중 수도권과 가장 가깝다. 장재영 혁신도시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시즌1 초기에도 상당수 여성 직원들이 퇴직했는데 통근버스가 사라지면 그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북혁신도시(김천) 가족 동반 이주율도 51.3%로 저조하다. 이곳 C공공기관 박모(31) 대리는 부산에서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김천에) 뭐가 많이 없다”면서다. 정주 여건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한 도시공학 전문가는 "시즌1에서는 혁신도시 정주 여건이 미비한 상태에서  일단 공공기관 이전을 밀어붙였고, 현재도 여전히 정주 여건이 부족하다. 살 매력이 없다는 얘기"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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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혁신도시 가족동반 이주율 51%
혁신도시에는 대형병원이 한 곳도 없다. 교육의 질은 둘째치고 고등학교 자체도 부족하다. “혁신도시에서 고교생 자녀를 둔 40대 후반, 국장급 이상은 보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오모(36) 과장은 D공공기관이 서울에서 강원혁신도시(원주)로 옮기자 원주시민이 돼 원주 여성과 결혼했고 원주를 본적으로 둔 아들도 봤다. 하지만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서울 부모님 댁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강원혁신도시에는 고등학교가 여고 한 곳뿐이다.

“또 가는구나. 우리도 문 닫자.” 지난 6일 강원혁신도시 ‘덕포리 국수’ 사장님 김미영(56)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금요일인 이날 퇴근 시간 1시간 전인 오후 5시부터 강원혁신도시는 분주했다. 11개 공공기관 중 6곳으로 통근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가장 규모가 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우 2024년 12억7000만원을 통근버스 비용으로 지출했다. 1회 운영비는 87만원. 한 해 1460여 회를 운행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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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 금요일 퇴근 무렵 강원도 원주혁신도시의 거리 풍경.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혁신도시는 '유령 도시'가 된다. 김홍준 기자

김 사장은 강원혁신도시가 태어난 직후부터 10년째 장사 중이다. 처음에는 브런치 카페를 열었다가 접었다. 공공기관 직원들이 이곳에 상주하며 주말에 느긋하게 ‘아점’을 하러 올 줄 알았다. 그는 “통근버스를 2년만 운영한다더니, 연장에 연장해서 10년째 직원들이 저렇게 (수도권) 집으로 돌아가니 장사가 되겠나”고 푸념했다.

이곳 음식점과 카페는 다른 혁신도시처럼 평일 장사만 한다. 특히 카페는 오후 3시면 여지없이 문을 닫는다. 민한나(48) 커피점 사장은 “그 시간 이후 이곳은 유령도시가 된다”고 한탄했다. 이번 달처럼 명절 연휴가 끼면 아예 ‘공치는 달’로 부르기도 한다. 상인들은 시청과 공공기관에 ‘통근버스를 없애 달라’며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상인들은 “통근버스가 사라지면 상권이 살아날 수도 있겠다”며 반색했다. 충북혁신공용터미널 관계자도 “승객이 20~30% 늘고 좀 북적거리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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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혁신도시와 함께 수도권에서 통근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많은 충북혁신도시에는 상권이 좀처럼 살지 않아 공실이 많다. 김홍준 기자

구내식당을 없애야 주변 상권이 살아날 수 있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나왔다. 지난 5일 이 대통령도 “밥 먹다가 얼핏 생각났는데 … 이전하는 공공기관에 구내식당을 만들지 말고, 직원들에게 밥값을 지원해 주는 게 낫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충북혁신도시 E공공기관의 구내식당은 붐볐다. 통근버스 기사들이 식사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한 도시공학 전문가는 “대부분의 혁신도시 구내식당은 지역민을 고용하고 지역 식자재를 쓰는데, 구내식당을 없애 상권을 살리겠다는 건 소상공인만을 위한 일방통행 아닌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공기관 통근버스 기사들은 일감을 놓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고 일관됐다. “세금으로 통근버스를 운영하는데 사회 통념상 맞나 싶다. 나도 운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될 때가 많다. 일감이야 다른 일이 들어올 테고.”

‘공공기관 혁신에 관한 지침’은 사회 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복리후생 항목을 폐지하거나 감액하면 이를 대체하는 유사한 제도를 도입할 수 없고 다시 증액할 수도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르면 다음달, 늦어도 오는 6월 폐지되는 수도권 통근버스가 ‘공식적으로’ 되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 통근버스 기사는 “벌써 몇몇 직원은 ‘사람을 모아올 테니 따로 계약할 수 있냐’며 개별 문의하기도 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직원·가족·상인·기사 등 수십만명 술렁
통근버스 운영비가 세금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정부의 공공기관 지원액은 2024년 기준 128조원. 공공기관 수입 중 13.5%다. 이 ‘세금’이 직접 통근버스에 사용된 건지, 공공기관 수입에서 사용된 건지는 불분명하다. 한국전력처럼 수입이 있는 공공기관인지, 세금과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인지에 따라 재원 성격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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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 금요일 퇴근 무렵 강원혁신도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차장에 대기 중인 통근버스로 직원들이 향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현재 금요일을 제외한 평일 통근버스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이에 대해 대구혁신도시 주민 조모(52)씨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아파트 우선 분양권과 이주 정착 지원금, 자녀 학자금 등이 세금과 공적 재원에서 나갔는데도 수도권에 산다면 특혜가 아니고 뭐겠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장 부원장은 “통근버스를 없애 수도권 거주 직원을 이주시키겠다는 건 강제이고, 가뜩이나 어려운 고속열차표 구하기가 전쟁 수준이 되고 차량 이용 증가와 교통 정체 등으로 직원들의 개인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이 늘면서 지역 상권을 살릴 지갑이 닫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교수는 “통근버스발 혁신도시 시즌2에는 이재명 정부 역점 과제인 수도권 일극 탈피, 지역 인재 채용을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이 집약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하지만 부동산 소유욕이 워낙 강한 우리나라에선 보다 신중하고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올 상반기 중 시즌2 이전 대상을 확정하고 2027년부터 이전을 시작할 계획이다. 지자체들도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공공기관 유치에 뛰어들었다. 권 교수는 “혁신도시는 클러스터를 형성할 정도의 기업들이 함께 가야 제 기능을 할텐데 현 상태로 어떤 기업이 가겠나”라고 주장했다. 장 부원장은 “지난해 혁신도시 10곳을 상생·협력·활력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전남광주혁신도시만 B등급이었고 나머지 9곳은 모두 C등급 이하였다. 혁신도시가 상생 없이 고립된 섬이 됐다”며 “일단 보내 놓고 본 시즌1을 시즌2에서 되풀이되면 안 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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