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약국서 화장품 싹 쓸어간다…외국인 몰리는 '홍대 약국' 정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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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홍익약국 전경. 이곳은 1:1 상담을 거쳐 구매 가능한 더마코스메틱 제품을 판매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전체 고객의 60~70%에 달하며, 'K-뷰티' 성지로 입소문이 났다. 김세린 기자

지난 3일,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홍대 거리에서 요즘 가장 핫한 매장은 약국이다. 4층 규모의 초대형 올리브영 매장 맞은편에 자리한 약국 앞은 평일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길게 늘어선다. 손에 들린 쇼핑백엔 감기약과 파스가 아닌 기능성 화장품과 재생 크림이 한가득이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한 ‘#한국 약국 투어(Korean Pharmacy Tour)’ 해시태그를 타고, 약국이 ‘K-뷰티 투어의 필수 코스’로 떠오른 것이다.

b. 플레이스

주인공은 홍익약국이다. 흰 가운을 입은 약사들은 카운터 뒤에 머물지 않는다. 매대 밖으로 나와 외국인 고객들과 눈을 맞추고 피부 고민을 듣는다. 시술 이력이나 생활 습관을 묻는 간단한 문진이 이어지고, 약사가 맞춤형 제품을 제안한다. 매장 앞 풍경도 여느 약국과 다르다. 미국·중국·일본 등 국가별로 따로 제작한 팸플릿과 국가별로 번역한 K-기초화장품 추천 안내문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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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약국의 수장 이중길 대표(39). 화장품과 제약회사 연구원을 거친 그는 이곳에서 '화장품 상담 길라잡이' 약사로 활동 중이다. 사진 이중길 대표 제공

이날 비크닉은 이중길(39) 홍익약국 대표를 매장에서 만났다. 약보다 화장품이 더 잘 팔리는 약국을 만든 건 그의 특이한 이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충북대 약학대학원 석사를 거쳐 LG생활건강 연구소에서 후와 숨 등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 제형을 설계했다. 이후 대웅제약 사업개발팀에서 시장 경험을 쌓았다.

“마케팅보다 사이언스”…화장품 연구원 출신 약사의 승부수

이 대표가 2021년 홍대입구역 한복판에 약국을 연 이유는 분명했다. 병원 처방에 의존하는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약사가 전문성을 증명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는 “약국 수익 구조는 병원 처방과 일반의약품(비처방 약) 판매로 나뉘는데, 특정 채널에 의존하는 방식이 늘 아쉬웠다”며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 상담 중심의 약국을 해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화장품을 전면에 내세운 전략 역시 LG생활건강 연구원 시절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대표는 “화장품 시장이 지나치게 마케팅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유효 성분이나 과학적 효과보다 콘셉트와 스토리가 앞서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사만이 할 수 있는 과학 기반(사이언스 베이스) 상담이야말로 신뢰를 만드는 핵심 경쟁력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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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하고 결제하기 바쁜 홍익약국의 약사들. 이들은 카운터 밖을 나와 제품 구매를 고민하는 고객들에게 직접 피부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김세린 기자

그는 약국을 약을 사는 곳이 아니라 상담을 받는 공간으로 정의했다. 이 대표는 “정보 비대칭이 상당 부분 해소된 시대지만, 검색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깊이가 있다”며 “화장품 매장 직원과 약사가 전달하는 정보의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차이가 결국 약국의 경쟁력이 된다”고 했다. 이런 전략은 약국 공간 구성에도 반영됐다. 약국의 무채색·밀폐형 구조를 버리고 연한 청록빛 조명과 개방적인 동선을 적용하기 위해 인테리어에만 수억원을 들였다.

“인기템 대신 문진부터”…약사가 만든 K-뷰티 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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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마코스메틱 화장품이 진열된 홍익약국의 매대. 외국인 관광객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김세린 기자

홍익약국에서 현재 전체 고객 중 외국인 비중은 60%를 웃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이 대표는 입소문이 난 인기 제품을 권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피부 상태를 맨눈으로 확인하고, 수분 섭취량이나 시술 이력 혹은 생활 환경을 묻는 문진을 한다. 제품 추천은 그 다음”이라며 “국가별로 선호하는 제품이 다르기 때문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중국인은 여드름 흉터 치료와 재생 케어에, 일본인은 기미·미백 등 항산화 관리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효과가 강할수록 자극도 클 수 있다는 점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약사의 역할”이라며 “과장된 기대보다 관리의 원리를 이해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본보다 본질”…‘미슐랭 스타’ 약국을 꿈꾸다

홍익약국과 비슷한 ‘뷰티 특화 약국’은 최근 명동과 홍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대형 자본이 투입된 매장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이익만을 앞세운 무분별한 확장은 결국 K-뷰티 전체의 신뢰도를 깎아 먹을 수 있다”며 “지금은 양적 팽창보다 기준을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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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약국 맞은편 상권 전경. 4층 규모의 초대형 올리브영 홍대 타운 매장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홍익약국과 비슷한 콘셉트의 K-뷰티 특화 약국이 자리하고 있다. 김세린 기자

홍익약국에는 체인화나 브랜드 확장을 제안하는 문의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아직 대부분의 제안을 정중히 고사하고 있다. 약국의 경쟁력이 규모나 속도가 아니라 상담의 밀도와 신뢰의 깊이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적으로 확장하려는 마음이 앞서면 지금의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약국의 경쟁력은 규모나 속도가 아니라, 상담의 밀도와 그 과정에서 쌓이는 신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외국인 관광객의 에피소드를 꺼냈다. 이 대표는 “끈질긴 상담 끝에 제품을 구매했던 한 영국인 관광객이 6개월 뒤 다시 한국을 찾아 가족과 함께 대량 구매를 한 적이 있다”며 “상담이 가진 힘을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식당으로 치면 미슐랭 스타를 받을 수 있는 약국이 목표”라며 “한 명의 외국인 관광객에게 홍익약국의 경험은 곧 한국 여행의 전부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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