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왕사남' 엄흥도처럼 진짜 단종 자살 도왔나…단종 최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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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박지훈)의 유배 생활과 마지막 순간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쇼박스
232만 관객(16일 현재)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영화 '왕과 사는 남자'(4일 개봉)는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만든 팩션 사극이다.
엄흥도가 단종 자살 돕는 건 완전 허구 #유배 중 금성대군의 거병은 과장된 것
폐위된 단종(박지훈)이 강원도 영월 산골 유배지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 등 마을 사람들과 인간적 유대를 쌓아가다가 결국 세조 집권 세력에 의해 죽음을 맞는 내용이다.
단종(노산군)의 유배 생활과 인간적 고뇌, 마지막 순간을 담은 영화에는 영화적 허구가 적잖게 섞여 있다. 당시의 기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박지훈, 왼쪽)과 유배지 촌장 엄흥도(유해진)는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정서적 유대를 쌓아간다. 사진 쇼박스
영화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이 뼈대로 삼았던 기록은 '노산군(단종)이 돌아가시자 엄흥도가 슬퍼하며 곡을 하고 시신을 수습한 뒤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평생을 숨어 살았다'는 실록의 단 두 문장이다. 단종의 비극적 최후를 그리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울 수 밖에 없었다.
영화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일까. 영화 제작진에 자문을 해준 김순남 교수(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에게 물었다. 조선 전기 정치사를 전공한 그는 최근 논문 '조선 세조 대 노산군의 영월행 검토- 유배인가 유폐인가'를 쓰고, 『세조, 폭군과 명군 사이』(2022)란 책도 냈다.
-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가 그의 자살까지 도왔다고?
"영화에선 엄흥도가 단종의 청을 받아들여 그의 목에 맨 줄을 잡아당겨 자살을 돕는 걸로 나오는데, 이건 가장 큰 허구다. 엄흥도는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을 뿐이다. 그와 단종이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영화는 엄흥도 관련 기록을 토대로 둘의 관계를 상상해낸 것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 사진 영화사
- 그럼 누가 단종을 죽였나?
"세조(1455~1468) 실록에는 '장인과 삼촌 금성대군이 자신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사형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단종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고 나온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대 기록에선 단종의 죽음을 다르게 묘사한다. 선조(1567~1608) 실록엔 '단종 유배지인 영월에 사약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단종과 성삼문 등 사육신을 복권한 숙종(1674~1720) 때 기록(숙종 실록)은 더 구체적이다. '의금부사 왕방연이 영월에 내려와 단종에게 죽음을 내려야 하는데 우물쭈물하자, 단종 옆에서 시중 들던 공생(과거 시험 준비생)이 스스로 나서 단종을 죽였다. 공생은 직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하늘이 공생에게 벌을 내린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 공생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한 건가?
"세조 집권 세력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단종의 존재였다. 그가 살아있는 한 정통성 시비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고, 단종 복위 움직임 또한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생은 누구도 차마 나서지 못하는 일, 즉 단종을 죽이면 큰 공을 세우고 출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 끈으로 단종의 목을 졸라 죽였다는 건 사실인가?
"그건 조선 시대 야사를 모은 연려실기술에 나오는 내용이다. 숙종 실록엔 없는 '어떻게 단종을 죽였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지만, 공식 기록이 아니기에 사실로 단정할 순 없다. 연려실기술에는 '단종을 모시던 통인(시중 드는 사람)이 단종을 죽이는 걸 자처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단종이 앉은 좌석 뒤로 가서 목에 걸고 창문으로 끈을 잡아 당겼다'고 나온다. 영화에선 단종이 이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택하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복위를 위해 거사를 일으키는 금성대군(이준혁). 사진 쇼박스
- 영화에서처럼 금성대군(이준혁)이 단종과 서신 교환을 하고 단종 복위를 위해 군사를 일으켰나?
"금성대군의 유배지 순흥(경상북도)과 영월이 가깝긴 하지만, 금성대군과 단종이 연락을 취했다는 기록은 없다. 금성대군은 형 수양대군(세조)의 왕 즉위에 반대해 세조의 눈 밖에 났는데, 단종 복위 모의에 가담하면서 순흥에 유배됐다. 금성대군이 단종에게 서신을 보내 거사의 중심에 서 달라고 청하는 것은 영화적 상상이다. 단,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모반을 꾀하다 계획이 누설돼 사약을 받은 건 기록에 있다. 영화에서처럼 대규모로 군사를 일으키진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영화 속 금성대군의 역할은 많이 과장됐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폐위를 주도한 한명회(유지태). 사진 쇼박스
- 영화 속 한명회는 그간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실제로 풍채가 좋았나?
"한명회는 칠삭둥이라는 기록 때문에 드라마·영화에서 왜소한 체격으로 묘사돼 왔다. 하지만 그의 체격이 작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20년 넘게 최고 권력을 누리고,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세도를 가졌던 그의 입지를 감안할 때, 체격 좋은 유지태 배우가 역할을 맡은 게 한명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 단종 복위 운동이 장항준 감독의 말대로 '실현되지 못한 정의'인가?
"사육신이 복권되고 충신으로 떠받들어지게 된 건 조선 후기 숙종 때다. 집권 세력의 변화, 정치적 이해관계 등이 반영된 결과다. 세조의 입장에서 사육신은 '세속적 욕망 때문에 어린 왕을 내세워 국정을 마음대로 주무르려 했던 역적들'이었지만, 숙종 입장에서는 '목숨을 걸고 왕에게 충성한 충절의 상징'이었다. 수양대군의 집권을 권력 투쟁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세조는 '왕이 되기 위해 어린 조카를 죽였다'는 비난에 시달렸지만, 법제 정비·국방 강화 등 조선의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에서처럼 역사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면 명쾌하고 쉽지만, 실제 역사를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이분법적 판단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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