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진도 도록도 남기지 않는다…티노 세갈의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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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의 티노 세갈, 왼쪽은 김성원 부관장. 사진 리움미술관
‘생각하는 사람’ ‘발자크’ 등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조각 12점이 놓인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전시장 한가운데 젊은 남녀가 몸을 포개고 누워 있다.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미술의 주제, 키스의 장면들을 재구성한 동작을 천천히 이어나간다.
다음 달 3일부터 열리는 티노 세갈(50)의 국내 첫 개인전에 나온 대표작 ‘키스’(2002)다. ‘키스’로 대표되는 19세기 로댕의 인체 조각과 21세기 세갈의 ‘키스’가 만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불후의 순간을 만들었다. 미술관은 이 작품을 위해 실제 커플인 무용수들을 공개 모집했다. 세갈은 자신의 퍼포먼스 작품은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고, 퍼포머는 '해석자(Interpreters)'라고 부른다.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은 어떻게 존재할까’ 화두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다음달 3일부터
전시를 앞두고 25일 언론 선공개를 연 미술관 입구부터 남달랐다. 보안요원 차림의 해석자 세 명이 입장객을 둘러싸고 발랄하게 춤추며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This is so contemporary!)”라고 반복해서 외쳤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세갈의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2004)가 완성된다.
'티노 세갈' 전이 열리는 리움미술관. 권근영 기자
그러나 기사에서 묘사한 작품의 사진은 쓸 수 없다. '물질적 대상이 없는 예술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를 평생 화두로 삼아온 작가는 사진ㆍ영상ㆍ도록을 일절 남기지 않는다. 오로지 전시 현장에서 보고 느낀 기억만이 전해진다. 아주 오래전 춤ㆍ이야기ㆍ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듯. 전시장에서 만난 세갈은 "어린아이에게 야구를 가르칠 때 책을 쥐여주기 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듯, 몸으로 지식을 전파하는 것은 지금도 유효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극장보다 전시 공간이 관객과 상호작용하기 더 쉬운 장소"라며 "예술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게임"이라고 덧붙였다.
전시장 입구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비즈 커튼을 헤치고 들어가면 티노 세갈의 '구성된 상황'이 펼쳐진다. 사진 리움미술관
독일의 공업도시에서 성장한 그는 "어릴 적 내 방에선 도시의 산업시설이 한눈에 보였다. 자원 채굴과 생산 중심의 삶이 생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이어서 무용을 전공했다.
점점 물질화되어가는 미술 전시, 미술 시장에 반기를 든 그의 작업은 역설적으로 미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 구겐하임은 2010년 미술관 전체를 비우고 해석자들과의 대화로만 채웠다. 그의 퍼포먼스는 런던 테이트 모던(2012), 파리 팔레 드 도쿄(2016), 퐁피두 센터(2025)로 이어지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지만, 관객들의 기억 속에 강렬한 예술적 사건으로 저장됐다. 세갈은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티노 세갈은 전시를 위해 리움미술관 소장품들을 재배치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에 제프 쿤스의 '화병'이 바짝 붙어 있다. 사진 리움미술관
인간의 몸짓과 소리로 작품을 만드는 그는 살고 있는 베를린에서 뉴욕까지 기차와 배로 이동하는 등 지속가능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번 방한 때도 저탄소 항공유를 사용하는 비행기 기종으로 골라 탔다.
전시장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를 즐기는 오늘날, 촬영 불허의 전시는 미술관에 모험일지 모른다. 이에 세갈은 “누구라도 하루 7~8시간 동안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일로 여길 것”이라며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내려놓고 현재에 몰입하길 권했다.
미술관 로비에서 선보이는 신작 ‘무제’를 비롯해 리움미술관의 소장품과 어우러진 총 8점의 퍼포먼스가 출품된다. 중앙 홀의 퍼포먼스는 6주 간격으로 다른 작품으로 교체된다. 6월 28일까지, 성인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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