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방중 앞두고…6년 만에 ’혈맹의 상징’ 전면 복원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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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평양행 여객 열차가 대기 중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 기차역 국제 열차 대합실로 승객들이 향하고 있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어느 쪽이니? 저기 2층으로 가면 되나?”
13일 오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 기차역에 단체옷으로맞춰 입은 사람들이 줄이어 입장했다. 똑같이 검은색 외투를 입은 이들 손에는 대형 여행용 가방이 들려 있었다. 한껏 들뜬 듯 북한 말투로 크게 떠들며 ‘국제 열차 대합실’이라 적힌 곳으로 향했다.
이날 단둥역엔 베이징서 출발한 평양으로 향하는 여객 열차가 도착했다. 총 18량으로 17·18호 차 2량만 국제 승객용으로 편성됐다. 흰색과 남색 조합으로 구분된 후미 2량 회벽엔 '베이징-평양' 표지가 붙었다. 오전 10시(중국 시각) 단둥역을 떠난 이 열차는 오후 6시 15분(한국시각) 평양에 도착한다.
13일 오전 평양행 여객 열차가 대기 중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 기차역 국제 열차 대합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베이징-평양 여객 열차는 6년 만에 재개됐다. 이 노선은 단둥과 신의주를 거쳐 양국 수도를 연결한다. 북·중 우호의 상징적 교통수단으로 지난 1954년 운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2020년 1월 북한이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들며 국경을 전면 봉쇄하며 중단됐다.
2022년 화물 열차 먼저 재개된 이후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며 북·중 관계가 전면 복원된 지 6개월여 만에 여객 열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베이징과 평양을 연결하는 열차 노선은 매주 4회(월·수·목·토) 운행하고 단둥과 평양 사이를 오가는 열차는 매일 한 차례 운행할 예정이다.
13일 오전 평양행 여객 열차가 대기 중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 기차역 국제 열차 대합실에서 승객이 탑승 수속을 하고 있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전날 오후엔 평양에서 출발한 여객 열차가 6년 만에 처음으로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압록강철교)를 넘었다. 중국 측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파란색 기관차를 포함해 총 9량이었다. 녹색과 흰색으로 구성된 열차엔 한글로 ‘베이징’이라고 목적지를 표시했다. '최고 시속 120㎞'나 '일반 침대' 등의 글자도 붙어 있었다.
일부 승객들은 환히 웃으며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제복을 입고 잔뜩 긴장한 해 밖을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다. 뒤편 일부 객차는 아예 커튼으로 모든 창문을 가려놓기도 했다. 이 열차는 단둥에서 객차 2량을 떼어낸 뒤 중국 K28 열차에 연결해 선양·산하이관·톈진 등을 거쳐 베이징으로 향했다.
12일 오후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중조우의교를 건너고 있는 평양발 베이징행 여객열차. 사진 이도성 특파원
평양에서 출발한 일부 승객은 단둥역에서 하차했다. 입국 수속을 거친 뒤 가족이나 동료들이 기다리는 출구로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상봉한 이들은 포옹을 하거나 악수를 하며 정을 나눴다.
프라다 로고가 박힌 가방을 든 한 남성은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스마트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북한 말투로 “역에 도착했으니 빨리 오라”고 말한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는 신기한 듯 밝은 표정으로 역 광장을 뛰어다녔다. 곁에 있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은 기다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듯 연신 두리번거렸다. 이후 멀리서 다가오는 일행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12일 오후 중국 랴오닝성 단둥 기차역에서 평양발 여객 열차에 탑승했던 승객들이 출구로 나서고 있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단둥역에서 2km 떨어진 대형 쇼핑몰인 신류(新柳) 시장에선 귀향을 준비하는 북한인들이 여럿 포착됐다. 한 북한 남성은 이곳에서 산 물건을 대형 여행 가방에 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옆에 있던 여성 일행은 또렷한 북한 말로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상점 주인은 “북한의 운동선수들”이라면서 “귀향을 앞두고 잔뜩 쇼핑하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상점 안에 인공기를 건 한 잡화점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으며 호객했다. 북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건이라면서 400위안(약 8만원) 상당의 여행용 가방을 추천했다. 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북한 말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12일 오전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대형 쇼핑몰 신류시장에서 한 북한인 남성이 구매한 물건을 여행용 가방에 담고 있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6년 만에 열린 여객 철로는 당분간 공무용으로 활용하다 점차 관광 등 민간 교류로 확대될 예정이다. 북·중 경제 밀착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단순히 교역을 회복하는 단계를 넘어 오랜 혈맹 관계를 예전처럼 회복하는 모양새다.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대북 수출은 약 23억 달러(약 3조4220억 원)로 전년 대비 25.2% 증가했다. 전체 교역 규모도 약 27억 달러(약 4조원)를 기록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상태다.
12일 오후 6년 만에 복원된 평양발 베이징행 여객열차가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중조우의교를 건너고 있다. 사진 이도성 특파원
이는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 중국의 전략적 판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에 밀착하던 북한을 중국으로 끌어당겨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양국은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말 방중 계획을 밝힌 만큼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또한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지를 내비쳐 온 북미 대화를 위한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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