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563번 시험 끝에 성공...원조 제친 중국 하이테크 혁신의 현장과 비결[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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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AI 리더로 만든 혁신의 설계자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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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했다. 처음 책을 뽑아들었을 때 ‘중국 기술 찬양서가 또 한 권 나왔구나…’ 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기술 굴기에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중국은 뭐든 싸게 잘 만든다. 그런데 이 법칙, 하이테크 분야에서도 통한다. BYD는 지난해 4월 미국 GM의 보급형 전기차 가격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전기차 ‘시걸’을 내놨고,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 G1은 테슬라 옵티머스 로봇의 절반 가격에 판매 중이다. 2025년 초, 글로벌 인공지능(AI) 업계를 발칵 뒤집은 ‘딥시크 쇼크’도 본질은 가성비다. 미국 빅테크의 AI 모델과 유사한 성능의 제품을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10분의 1 비용으로 개발해서다.

지난해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 박람회의 유니트리 부스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두 대가 격투 시연을 벌이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펴낸 『중국을 AI 리더로 만든 혁신의 설계자들』은 이 같은 현상의 이면을 깊숙하게 파고든다. 취재팀은 전 세계를 강타한 중국 혁신 기술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다. “몰랐으니 놀란다. 우리는 그동안 중국 과학기술 분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짝퉁의 나라요, 가성비의 천국일 뿐이었다.” 우리만 몰랐을 뿐,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술 혁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2010년 중국의 혁신 및 첨단산업 생산량은 미국의 78%였지만, 2020년엔 미국의 139% 수준이 됐다. 혁신의 본고장인 미국을, 추격자 중국이 가뿐히 뛰어넘은 것이다.
취재팀은 중국 혁신의 맥락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핵심은 생태계의 중심에 국가가 있다는 점. 정부가 나서 방향을 제시하면 기업·대학·금융기관 등이 일사불란하게 결집해 기술 혁신에 매진하는, 이른바 ‘신형 거국체제’로 불리는 발전전략이다. 과거의 공산주의식 계획경제가 아니다. 이 국가 총동원 체제는 철저하게 ‘시장’과 결합하며 파괴력을 배가한다. 정부와 산·학·연, 그리고 자본이 시장과 호흡하며 자생적인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중국 하이테크 굴기를 완성한 진짜 로직이다.
국가와 자본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기업과 창업가들은 피를 흘려가며 혁신을 실행한다. 1563번의 시험 비행 끝에 2018년 중국 최초 플라잉카 유인 비행에 성공한 샤오펑후이톈의 집념, 신입사원 멘토링을 통해 인재를 키워낸 화웨이의 비결, 영어 28점 맞던 중국 저장성 출신 왕싱싱이 세계 4족 로봇의 60%를 만드는 유니트리를 창업한 사연까지, 현장에서 길어낸 생생한 사례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책은 ‘딥시크 쇼크’의 배후를 본다. 거대하고 치밀하게 짜인 중국의 ‘혁신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베이징, 우한, 선전 등 중국 혁신의 심장부를 직접 취재해 혁신의 원동력을 ‘STATE YMCA’라는 9가지 키워드로 명쾌하게 풀어낸다. 국가주도혁신(State-led Innovation), 풍부한 인재와 창업자금(Talent Pool·Angel Capital), 전방위 제조역량(Total-Tier-Plant), 생태계와 공급망(Ecosystem & Supply Chain) 등이다. ‘STATE YMCA’로 무장한 중국 AI와 하이테크 산업은 주변 경쟁자를 밀어내고 독주할 태세다.
안보와 기술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시대다. 지정학 분쟁의 승패가 기술로 결정된다. 그러기에 이 책은 우리 기술에 대한 서늘한 경고장이자, 생존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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