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란 “전쟁 전으로 못가”…호르무즈 봉쇄 ‘판도라 상자’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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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태국 화물선 ‘마유리 나리’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여 있다. EPA=연합뉴스

세계의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해협이 전쟁 후에도 안전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 이란이 앞으로도 호르무즈 해협을 인질 삼는 전략을 쓸 수 있다고 시사했기 때문이다. ‘자살 행위’란 평가를 받았던 해협 봉쇄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효과를 발휘함에 따라 이란이 앞으로도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18일 X(옛 트위터)에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반발해 지난달 28일 전쟁 시작 직후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 중이다. 이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던 유조선 250척 등 약 1100척의 선박이 페르시아만 인근에 발이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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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18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갈리바프 X 캡처

갈리바프 의장은 전쟁 후에도 과거처럼 선박들이 해협을 자유롭게 항행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선박 운항을 이란이 통제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이번 전쟁이 해협 봉쇄의 상시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 폭이 34㎞에 불과하고,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간다. 이란은 과거 외교적으로 위기에 몰릴 때마다 이곳을 봉쇄한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실제 전면 봉쇄는 없었다. 1980~88년 이라크와의 전쟁 당시 유조선을 공격하고 기뢰를 설치하며 통행을 일부 제한했을 뿐이다. 그 외엔 개별 유조선을 피격·피랍하는 수준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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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이란에도 해협 봉쇄는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이란 역시 가장 큰 자금원인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으로 수출한다. 봉쇄는 경제 목줄을 스스로 죄는 행위일 수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은 “해협 봉쇄로 세계 원유 유통을 틀어막을 경우 국제사회 제재를 받는 이란으로서 더 큰 외교적 고립에 빠질 수 있었다”며 “미국·이스라엘 등 서방에 공격 명분을 줄 거란 우려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공격이 상황을 바꿨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가 숨지는 등 초유의 상황을 접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해협 통행 불가를 선언하고, 선박 공격에 나섰다. 2주 넘게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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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지난 11일 X(옛 트위터)를 통해 ″유조선이 미 해군 호위를 받으며 호르무즈 해협을 건넜다? 아마 플레이스테이션(소니 콘솔 게임기)에서일 것″ 이라고 조롱했다. 갈리바프 X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해군은 궤멸됐다. 미 해군이 유조선을 호위할 것”이란 호언장담도 통하지 않는다. 실제론 작전의 어려움으로 인해 미군의 호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갈리바프 의장이 지난 11일 X에 “유조선이 미 해군 호위를 받으며 호르무즈 해협을 건넜다? 아마 플레이스테이션(소니 콘솔 게임기)에서일 것”이라고 조롱했을 정도다.

해협 봉쇄로 이란 경제가 힘들어질 거란 예상도 빗나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위성사진을 분석해 지난달 28일 개전 이래 최근까지 이란의 원유 수출 대부분을 책임지는 하르그 섬에서 원유를 선적한 초대형 유조선이 최소 13척에 이른다고 전했다. 또한 유가 폭등이 더해져 이란이 원유 수출로 매일 평균 1억4000만 달러(약 2100억 원)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추산했다.

CNN은 “이란이 자국 석유 수출이 막힐까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꺼릴 거라 미국이 가정했다면 잘못 계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가 급등을 우려한 미국이 이란의 석유 수출을 놔두고 있는 탓도 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16일 CNBC에 “세계에 원유가 공급되도록 이란 배들이 (해협을) 나오도록 놔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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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인도 구자라트 문드라항에 정박한 인도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시발릭호에 해안경비대 선박이 접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對)이란 포위망에도 균열이 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등 7개국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청했지만 대부분 난색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이란은 중국, 인도, 파키스탄, 튀르키예 등 자국과 우호적인 국가에 선박 통행을 허가하고 있다. CNN은 이란이 위안화로 거래되는 원유를 싣는 조건으로 선박을 통과시켜주는 걸 8개국과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이란으로선 호르무즈 봉쇄 카드의 전략 효용성을 체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전쟁 후 봉쇄 카드를 마음대로 쓰긴 힘들 거란 전망도 나온다. 박현도 교수는 “미국의 무리한 공격이 현재 봉쇄에 어느 정도 명분을 줬다지만, 다음에 재연된다면 국제사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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