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인력거 누비던 거리에 벤츠…中 부촌 20년 만의 반전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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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차이나 워치] 20년 만에 다시 가본 저장성 이우
이우 메이롄후이(美聯荟)의 라방 장면. ‘라방’이 주요 판매 방식으로 부각되면서 이우에 젊은이들의 창업이 이어지고 있다. 김매화 기자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유연성에 감탄하고, 인공지능(AI) 혁신에 놀란다. 그들의 하이테크 굴기에 다들 눈을 빼앗겼다. 그렇다면 중국의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중국 최고의 ‘소상품(일반 생활 용품) 도시’라는 저장(浙江)성 이우(義烏)를 찾은 까닭이다.
20년 만의 취재 길. 시내 푸톈루(福田路)의 거대 소상품 쇼핑센터인 국제상무성(國際商貿城)은 여전했다. 축구장 990개의 면적, 예나 지금이나 상품은 다양했다. 약 210만 종의 소상품이 세계 각지에서 온 바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 산타클로스 10명 중 8명은 이우에서 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동·아프리카 등에서 왔을 듯한 외국인들이 상가를 분주히 돌고 있다.
“이우 정전되면 세계 성탄트리 불 꺼져”
이우 국제상무성 1기에 자리 잡은 보석 장식품 매장. 국제상무성에는 현재 약 2만여 종류의 소상품이 바이어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우덕 기자
달라진 것도 분명 있었다. 우선 거리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20년 전 취재 때는 도로에 온통 인력거뿐이었다. 밀고 끌고, 물건을 가득 실은 인력거가 거리를 장악했었다. 지금은 벤츠·아우디 등 호화 자동차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녹색 번호판을 단 전기차가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한껏 부푼 이우의 부(富)를 상징한다.
상품 품질도 달라졌다. ‘조잡하지만, 싼 가격’이 이들의 전통 경쟁력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품질 우선이다. “값만 싸다고 팔리지 않아요. 이제는 공급 업체끼리 경쟁이 붙어 최상의 품질만 살아남아요.” 이우 상성그룹 장리(張利) 부총경리의 말이다. ‘두뇌가 없다’던 세계 공장은 그렇게 기술을 축적해왔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이우에서 시작된다!’. 시내에서 본 표지판이다. 중국이 이우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연결되는 화물 열차 노선을 개통한 건 2014년 11월이다. 1만3000㎞의 여정, 열차는 러시아·독일·폴란드·프랑스 등 유럽을 가로질러 스페인으로 이어진다. 이우 소상품은 ‘21세기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 전역에 뿌려진다. 취재진을 위해 만찬을 준비한 가오진(高晉) 부시장은 식탁에 오른 햄을 가리키며 “스페인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우 소상품을 싣고 갔던 열차가 돌아올 때 가져온 물품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진핑(習近平) 정책의 트레이드 마크인 일대일로는 이우에서 결실을 보고 있다.
이우는 중국에서도 유명한 부자 동네가 됐다. 젊은이들이 몰리는 고급 쇼핑 광장인 이우톈디(義烏天地)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야성이었다. “겉으로는 촌티가 나는 듯싶지만, 알고 보면 공장 서너 개 가진 라오반(老板·사장)들이 수두룩합니다. 이우의 속성이 그래요. 당연히 그들의 지갑이 두꺼울 수밖에요.” 김낙현 이우한인회 회장의 말이다. 이우의 1인당 GDP는 약 2만5000달러로 중국 평균의 2배 수준이다. 상하이가 3만 달러라는 걸 고려하면, 꽤 높다.
‘이우 모델’ 20년, 그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가오 부시장은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요약한다. 개혁 개방, 저장의 제조업 생태계 형성, 세계무역기구(WTO)가입, 일대일로 등 정치·경제 환경 변화에 누구보다 앞서 대응했다는 얘기다.
시작은 1982년이었다. 저장성은 개혁개방 초기 어느 곳보다 먼저 민영 경제가 발전한 곳이다. 라이터, 귀걸이, 인형, 성탄 용품…. 소규모 민영기업들은 임가공 제품을 쏟아냈다. 판매를 위한 집산지가 필요했고, 이우가 그 역할을 낚아챘다.
이우 펑광문화미디어의 주루야오 CEO는 “당시 척박한 땅 이우가 가진 거라곤 부지런한 사람뿐이었다”며 “그들이 하나둘 모여 점포를 차렸고,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고 초기 상황을 설명했다. 대륙 전역의 상인들이 저장성 소상품을 사기 위해 이우로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중국의 소상품 물류 허브로 성장하게 됐다.
국내 판매에 머물던 이우에 글로벌 전기가 마련된 건 2001년 WTO 가입이다. 중국은 WTO 가입을 계기로 ‘세계 공장’으로 거듭났고, 이우의 판매망은 해외 시장으로 뻗쳤다. 해외 바이어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우가 정전되면 세계 성탄 트리의 80%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여시구진, 시류 흐름에 함께 나아간다

지난해 12월 이우의 국제상무성에서 수입상들이 성탄절 상품을 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중 무역 전쟁의 와중에서도 이우의 교역량은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해 이우의 소상품 수출액은 약 825억 달러. 전년 대비 17.7%나 증가했다. 다각화의 힘이다. 중국은 그동안 중앙아시아·유럽·중동·아프리카까지 연결되는 ‘서향(西向) 물류 네트워크’ 구축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글로벌 사우스 전략이다. 이우는 그 정책 흐름에도 기민하게 대응했다. 이우-마드리드 화물 열차는 이를 상징한다.
전자상거래의 시대다. 소비자들은 상점에 가기보다는 인터넷에서 물품을 산다. 도매상으로 구성된 이우 상인들에게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언제나 그랬듯, 이우는 이 변화에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시내 중심가 허름한 오피스 빌딩에 자리 잡은 메이롄후이(美聯荟) 라이브 커머스(전자상거래 라이브 방송)센터. 사무실에 들어가니 서너 개의 ‘쪽방 스튜디오’에서 젊은 남녀가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의 앞에서는 또 다른 직원이 핸드폰과 PC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좌판을 두드린다. “틱톡 플랫폼에서 지금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루 24시간 방송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 CEO의 말이다. 이 회사 고객은 현재 20여 개. 주로 저장성 기업들이다. 4개 스튜디오에서 온종일 라방이 이어진다.
이우에서 전통 티베트 물품을 판매하는 단정스얼(丹增次爾) 사장은 “해외 바이어는 여전히 오프라인을 통해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고, 국내(중국) 소비자 일부를 대상으로는 라이브 방송 등 디지털 유통 거래가 활용되고 있다”며 “전자상거래가 확산하면서 매출은 오히려 더 늘었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 젊은이들이 이우로 몰리는 이유다.
‘여시구진(與時俱進·시류 흐름에 함께 나아간다)’ 철학은 이우의 국제상무성 상점에서, 마드리드 행 열차가 출발하는 이우 기차역에서, 그리고 라방 스튜디오에서 빛나고 있다.
글로벌 무역 인재 스카우트, 판매의 달인으로 키워

“큰돈 없이도 창업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우입니다. 이우의 다양한 소상품을 소싱하고, 무역을 통해 수출하고, 또 인터넷을 통해 제품을 팔 수 있는 곳이지요. 우리는 이런 일을 할 글로벌 무역 인재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우시 정부 산하 인력 양성 기업인 이우인재발전그룹의 CEO 푸징샹(傅靖翔)은 글로벌 창업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우식 창업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 이우인재발전그룹은 어떤 회사인가.
- “이우가 필요로 하는 고급 인재를 국내외에서 스카우트한다. 세계의 젊은이들을 이우로 불러 글로벌 무역 인재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 어떤 걸 배우나.
- “이우의 소상품을 해외 시장에 판매하는 전 과정을 교육하고 있다. 제품 소싱에서 선적, 통관 등 실무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배운다. 국제상무성에서 가격 흥정하는 법도 가르친다. 과정을 수료하면 어엿한 무역인으로 창업할 수 있다.”
- 해외 창업 지망생에게도 개방되어 있나.
- “물론이다. 외국 학생들도 이곳에 와 소상품 공장 방문부터 라이브 방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공부할 수 있다. 학생들이 직접 제품을 소싱해 인터넷으로 판매하니까 인기가 높다.”
-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나.
- “해외에서 온 학생들이기에 숙식과 안전이 중요하다. 오피스텔 수준의 방을 제공하고, 식사에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식당을 운영한다. 학생들이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중국을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견학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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