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원인 모를 발달장애” 실마리 풀었다…유전자 ‘읽기 오류’가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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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미규명 신경발달장애 원인 유전자(RNU4-2)의 변이 탐색, 임상 특징과 발병 기전 요약도
아이가 또래보다 한참 늦게 걷고, 말을 배우지 못하고, 머리 둘레가 작고, 발작을 반복한다. 부모는 이유를 알고 싶어 유전자 검사를 받지만 “이상 없음”이라는 결과를 듣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미규명 신경발달장애’ 환자들이 겪어온 현실이다.
국내 연구진이 이 오랜 수수께끼의 단서를 찾아냈다. 문제는 그동안 주로 검사해온 단백질 생성 유전자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평가가 제한적이었던 ‘비암호화 영역’에 숨어 있었다.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채종희·이승복·김수연 교수와 고려대 최정민 교수·홍주현 학생 공동 연구팀은 한국인 1만5450명의 전장유전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인 미상의 신경발달장애 환자 2797명을 선별해 비암호화 유전자 변이의 임상 특징과 발병 기전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신경발달장애는 전반적 발달지연, 소두증, 발작 등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최근 차세대 염기서열검사가 널리 쓰이고 있지만, 단백질을 생성하지 않는 비암호화 영역에 대한 평가는 제한적이어서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환자의 0.72%에서 RNU4-2라는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다. 이 가운데 85%에서는 동일한 변이 유형인 ‘n.64_65insT’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RNU4-2는 단백질을 직접 만들지 않는 ‘비암호화 RNA 유전자’다. 기존 유전자 검사가 주로 단백질을 만드는 영역에 초점을 맞춰온 탓에 이런 비암호화 영역의 변이는 놓치기 쉬웠다.
하지만 RNU4-2는 유전정보를 정확하게 잘라 붙이는 ‘스플라이싱’ 과정에 핵심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DNA 정보를 읽어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을 골라내고 이어 붙이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정보 처리 과정에 오류가 생기고, 결국 뇌 발달에 필요한 단백질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환자들의 임상 양상이 비교적 뚜렷하게 겹쳤다는 점이다. 해당 변이가 확인된 환자들에서는 신경발달장애가 100% 나타났고, 성장 부전이 88.9%, 안면 기형이 87.5%, 소두증이 80.0%, 뇌전증이 76.5% 동반됐다. 상당수는 걷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했다.
변이는 모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서 새롭게 생긴 ‘신생 변이’로 확인됐다. 부모의 유전자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채종희 교수, 고려대 최정민 교수
연구팀은 구조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발병 원리도 제시했다. RNU4-2에 변이가 생기면 RNA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바뀌어 스플라이싱에 필요한 특정 서열(ACAGAGA)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뇌 발달에 필요한 단백질들의 조합과 기능이 흔들리고, 광범위한 유전자 이상과 면역·염색체·DNA 대사 경로의 이상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채종희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규모 유전체 데이터가 희귀질환 원인 규명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앞으로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구축사업 등을 통해 환자와 가족들의 전장유전체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축적되면, 기존 검사로 찾지 못했던 미규명 환자들의 정확한 진단과 유전 상담, 나아가 치료 표적 개발로 이어지는 연구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Clinical Genetics’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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