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티 안 날 줄 알았던 AI리포트, 걸리자 “교수님, 증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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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고사 앞둔 대학가 ‘AI 부정행위’ 골머리

“리포트 과제를 작성할 때 인공지능(AI)을 안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사립대 캠퍼스에서 만난 문과대학 3학년 이모(21)씨는 최근 대학가의 AI 활용 실태를 묻자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티가 나지 않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동료 대학생들도 “어제도 자료 찾을 때 AI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생성형 AI의 활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챗GPT와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를 활용한 과제 수행과 시험 준비가 일상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리포트 작성에 특화된 AI까지 등장하면서 대학 캠퍼스에선 “이제 AI와 공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는 인식이 중론이 됐다. 대학들도 비상이 걸렸다. 조만간 치러질 중간고사를 앞두고 학생들의 AI 활용을 통제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면서다. 하지만 단순한 윤리 논쟁을 넘어 학습과 평가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점에서 대학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오픈 채팅방 활용한 집단 부정행위도
실제로 지난해 국내 주요 대학은 2학기 중간·기말고사 때 AI를 활용한 부정행위가 잇따라 적발되면서 큰 홍역을 치렀다. 서울대는 지난해 10월 교양 과목 중간고사에서 다수의 학생이 AI를 이용해 문제를 푼 정황이 포착돼 전원 재시험 조치했다. 사전 금지 공지에도 불구하고 제출 답안에서 AI 생성 코드가 발견되면서 집단 부정행위가 드러났다. 시험이 교내 강의실 컴퓨터를 활용해 진행됐는데, 코딩 기반 문제 특성상 기기 사용이 불가피했던 게 허점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같은 기간 치러진 연세대 비대면 강의 중간고사에서도 수강생 600명 중 190명 이상이 부정행위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고려대의 대규모 온라인 강의에서도 AI와 오픈 채팅방을 활용한 집단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대학들은 해당 시험을 무효 처리하고 수기로 재시험을 진행하거나 과제로 대체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서울대와 연·고대에서도 AI 부정 활용이 만연화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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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수경 기자

파문이 커지자 교육 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도 최근 ‘대학 AI 활용 윤리 가이드라인’ 시안을 발표했다. 생성형 AI 확산 이후 정부가 내놓은 첫 종합 대책은 AI를 무조건 금지하기보다는 수업 설계와 평가 전반에서 투명하고 책임 있는 AI 활용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다.

개별 대학들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중간고사를 앞두고 오프라인 시험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분위기다. ‘물리적으로’ 감독이 가능한 환경에서 AI의 개입을 최대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대형 강의나 온라인 기반 수업이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모든 시험을 대면 평가로 전환하긴 쉽지 않은 만큼 개인의 경험과 사고 과정을 묻는 서술형 문항이나 비판적 분석을 요구하는 문제를 늘리는 방식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김자미 고려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AI가 일반적인 정보 생성에는 강점을 보이지만 개별 학생의 논리적 맥락까지 완전히 재현하기는 어렵다”며 “교수들도 가급적 구두 면접 등을 병행하되 온라인 시험을 치러야 할 경우엔 AI가 그대로 모방하기 어려운 다층적인 정보나 역량을 요구하는 평가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우리보다 앞서 학생들의 생성형 AI 활용 문제로 논란을 겪은 미국 대학가도 최근 들어 ‘무조건 통제’에서 ‘선별적 허용’과 그에 따른 ‘교육 방식의 재구성’으로 대응 방식이 변화하는 모양새다. UC버클리 고등교육연구센터가 미국 내 대학들의 강의계획서 3만1000여 건을 심층 분석해 지난 2월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과제 초안 작성 및 수정(79%), 추론과 문제 해결(65%) 등 핵심 사고 과정에서는 AI 사용을 제한하는 비율이 높았다. 반면 편집·교정(17%)과 학습 보조 및 요약(20%) 등 부수적인 작업은 금지 비율이 낮아 대부분 허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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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수경 기자

이는 미국 내 대학들이 AI를 마냥 통제하고 금지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학습 과정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학생들이 반드시 직접 수행해야 할 심층적·다층적·분석적 사고 영역에선 AI의 개입을 최대한 차단해 학생들의 자율적 사고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강의 설계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미국 대학들, 교정·자료 요약은 허용
하지만 실제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수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시각과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AI 활용이 만연한데 정부의 대응은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적잖다. 한 수도권 대학 교수는 “거의 동일한 구성의 리포트도 여러 차례 받아봤다”며 “학생들을 추궁해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오히려 ‘증거가 있느냐’고 되묻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도 “교육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도 구체적인 대책은 없는 권고안에 가깝다”며 “시험 감독 인력 확보 등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가에선 “단순히 AI 활용을 규제·금지하는 것만으론 한계가 뚜렷해진 만큼 ‘AI 시대’를 기본 전제로 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과 평가 체계를 모색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오프라인 시험 확대나 서술형 평가 강화는 단기적인 대응책일 뿐, 근본적인 해법은 교육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 고등교육 전문 매체 에듀커스 리뷰에 따르면 대학생의 42%가 생성형 AI를 주 1회 이상 사용하지만 수업 개념 이해가 어려울 때는 84%가 여전히 사람에게 먼저 도움을 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생성형 AI를 주된 도움 수단으로 삼는 경우는 17%에 그쳤다. 기술이 발전해도 학습의 중심은 여전히 인간과의 상호작용에 있다는 함의다.

김상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AI 활용이 가속화하면서 정형화된 지식을 묻는 질문을 피하고, 학생 개인의 철학과 배경에 따라 다양한 답을 도출하는 문제를 출제하려고 노력한다”며 “이미 학생들 사이에선 AI 활용이 기본값이 된 만큼 교육과 평가 시스템도 이를 전제로 새롭게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방영석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경영학 교육에서도 AI를 활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솔로프리너십이나 창업 환경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제는 학생들이 AI가 내놓은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사고력을 기르는데 대학 교육의 목표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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