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AI와 첨삭 대결’...서울대 교수 실험에 190명 몰렸다

본문

bt241397958c448510002788d45d502c7b.jpg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열린 김영민 서울대 교수와 AI의 첨삭 대결. 사진 어크로스

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 5층 니콜라오홀에 190여명의 독자가 모였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인공지능(AI)이 벌이는 ‘공개 첨삭 대결’을 보기 위해서다. 독자들이 출판사 어크로스에 미리 보내온 900자 이내의 자유주제 에세이·논술문이 첨삭 대상이 됐다. 지난달 12일부터 29일까지 총 서른 편의 글이 도착했고,  출판사는 이 중 세 편의 글을 골라 김영민 교수와 클로드 오퍼스에게 전달해 사전 첨삭을 진행했다.

bt7321069ab38a90a08cf5f88b8a81a502.jpg

김영민 교수가 지난달 12일 출간한 개정증보판 『공부란 무엇인가』. 사진 어크로스

행사 주최 측인 출판사 어크로스는 당초 60명의 독자만 모집하려 했다. 그러나 예매창을 연지 하루 만에 전석이 매진됐고, 수용인원을 늘려 130명의 독자를 새로 받았다. 강태영 어크로스 편집자는 “『공부란 무엇인가』의 개정증보판 출간 기념으로 행사를 기획하다, 저자인 김영민 교수가 ‘AI와의 첨삭 대결’을 제안해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공부란 무엇인가』는 성숙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이야기하는 김 교수의 에세이로, 2020년 출간 이후 1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이날 첨삭을 위해 선별된 세 편의 글은 장르가 뚜렷이 나뉘어있지는 않았다. 첫 번째 글은 ‘아주 사적인 애도’라는 제목의 글로, 우연히 발견한 ‘떫은감협회’가 ‘감협회’로 이름을 바꾼 데에 아쉬움을 느낀 저자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두 번째 글 ‘집안일의 (눈)높이’는 싱크대의 높이에서 착안해 사람마다 경험해 본 일과 그렇지 않은 일에 다른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첨삭된 글은 ‘“무엇인가”란 무엇인가’란 제목으로, 김 교수의 책 제목에서 착안해 ‘무엇인가’의 의미를 질문했다.

독자들은 함께 세 편의 글을 읽은 후 AI의 첨삭과 김 교수의 첨삭을 비교했다. AI와 김 교수의 첨삭을 비공개로 맞춰보는 ‘블라인드 테스트’에도 참여했다. 김 교수는 첨삭 이전에 “바둑과 달리 글쓰기는 승패를 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며 “첨삭을 하기 전에 몇 가지 합의를 하여 프롬프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기준은 이렇다. ▶구조·문맥·흐름·논리·문체만 첨삭할 것 ▶원문에 코멘트를 다는 형식으로 첨삭할 것 ▶글이 우리 사회의 어떤 담론과 연결될 수 있는지 분석할 것 ▶글의 구조에 대해 피드백을 할 것 ▶5줄 이내의 총평을 제안할 것

대부분의 경우 AI와 김 교수의 첨삭 내용은 겹치지 않았다. AI는 제목의 주제에 맞게 일관적인 문장을 구상하길 조언했고, 빠른 리듬으로 읽힐 수 있도록 문장을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글의 장르와 저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해 첨삭했다. 에세이로 파악한 글의 경우 열거를 줄이기보다는 늘리라고 조언하거나, 저자가 사용한 단어의 의미와 문체 중 좋다고 여겨지는 것이 살아날 수 있도록 몇몇 표현을 고쳐볼 것을 제안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질문이 있다. 답을 구하는 질문과, 답을 구하는 ‘척’하는 질문. 물론 진심으로 정의(定義)를 요구하는 종류의 “무엇인가”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이 물음은 많은 경우 후자에 속하는 듯하다.

마지막 글의 첫 번째 문장에 대해 AI는 “‘물론’으로 시작하는 문장은 대부분 쓰지 않아도 되는 문장”이라며 “글쓴이가 자신의 논지를 아직 믿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김 교수는 단어의 표현만 지적했다. “‘정의’라는 표현을 ‘대답’으로 고치면 어떨지” 제안하며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정의 뿐 아니라 정체성을 묻기도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bt74dd09ba2ce8ef36e67a03330c66a043.jpg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열린 김영민 서울대 교수와 AI의 첨삭 대결. 사진 어크로스

아직은 AI보다 김 교수의 첨삭력이 높게 느껴졌다. 김 교수는 AI가 한국어 문장보다는 영어 문장을 더 많이 학습했다는 점, AI 종류와 프롬프트 등이 첨삭 수준에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이 ‘첨삭 대결’을 통해 “AI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지’ 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글쓰기 방식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의 내면을 보여준다”며 “지금 AI를 활용해서 글을 쓸 것인가, 최대한 내 힘으로 글을 쓸 것인가에 따라 어떤 인간이 될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에서만 20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 교수는 “최근에 AI를 활용해서 과제물을 제출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그것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미래에는 AI를 활용해 글을 쓰는 문화가 당연해질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본인 역시도 글을 쓰고 첨삭하는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초안은 내 힘으로 쓰려고 하는 규칙을 만들어뒀다”고 했다.

bt45358870fa87ed596efef172a81c7c83.jpg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열린 김영민 서울대 교수와 AI의 첨삭 대결. 사진 어크로스

현장에 온 독자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을 안고 있었다. 김 교수의 책을 좋아해서 왔다는 IT 개발자 정재훈(40)씨는 “개발자의 경우 시니어보다는 주니어들이 고민이 많다고 느낀다. 앞으로 AI가 우리 직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러 생각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클로드는 논리적인 답변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챗 GPT 등 다른 AI를 썼다면 다른 첨삭 결과가 나왔을 것 같아 궁금했다”고도 소감을 밝혔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온 대학생 선씨는 “단순한 흥미를 느껴 신청했는데, 생각이 많아졌다”며 “경제학과인데 AI 활용 과제가 많고, 최근엔 교수님들도 사용을 권하다 보니 어떻게 AI를 써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앞으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전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5,845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