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다 같이 줄이자vs살릴 건 살리자…시일 넘겨버린 석화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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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오일이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서 진행 중인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에서 원유를 정제해서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TC2C 건설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사진 에쓰오일

석유화학 기업들의 사업재편안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재편안 제출 시한인 올해 1분기를 넘기게 됐다. 국내 3대 석유화학 단지 중 대산과 여수에서는 기업들이 사업재편 계획서 최종안을 제출했지만, 울산에 있는 기업들은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게다가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슈가 ‘발등의 불’이 되면서 석화산업 구조조정은 사실상 우선순위가 밀리는 분위기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울산 석화단지의 3개 기업(SK지오센트릭·대한유화·에쓰오일)은 지난달 31일까지 정부에 사업재편 계획서 최종안을 제출하지 못했다. 사업재편안 제출 대상 단지는 대산(HD현대오일뱅크·롯데케미칼), 여수(여천NCC·롯데케미칼, LG화학·GS칼텍스), 울산(SK지오센트릭·대한유화·에쓰오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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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사업 재편 CEO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LG화학·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SK지오센트릭·에쓰오일 등 10개 석유화학 기업 최고경영자와 만나 구조조정 이행 방안과 정부 지원책 등을 논의했다. 뉴스1

앞서 2월, 산업통상부는 대산의 HD현대오일뱅크·롯데케미칼의 사업재편 최종안을 승인했고, 지난달엔 여수 1호 프로젝트(여천NCC·롯데케미칼)의 최종안이 정부에 제출됐다. 하지만 울산 산단은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에쓰오일의 상황과 이해관계가 크게 다르다.

먼저 나프타 분해 설비(NCC) 감축을 두고 기업별 주장이 판이하다. 에쓰오일은 올해 말 상업 가동이 목표인 ‘샤힌 프로젝트’가 감축 대상에 포함돼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샤힌 프로젝트는 2019년 에쓰오일이 약 9조원을 투자해 시작한 대규모 석화 프로젝트로, 연산 180만t 규모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설비가 올해 6월 새로 완공된다. 에쓰오일에 따르면 통상 원유로 나프타를 만들 때 수율이 15~18%라면, 이 설비는 60~70%로 높다. 석화 산업 경쟁력 개선이라는 정부 구조개편 목표에 비춰 보더라도 효율이 높은 설비를 가동하기도 전에 감축 대상에 포함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게 에쓰오일 측 입장이다.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도 설비 감축에 소극적이긴 마찬가지다. SK지오센트릭은 연 66만t 규모, 대한유화는 80만~90만t 규모 NCC를 보유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 설비가 가장 오래됐지만 규모가 작고, 가동을 멈추면 원료 수급을 따로 해와야 한다.

대한유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흑자를 기록하는 등 사업재편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울산에서는 샤힌프로젝트가 실제 가동되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논의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다른 산단에 비해 재편안 마련이 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산업통상부는 “속도에 대해 기업마다 인식·의견 차이가 있다. 속도를 높이려 계속 협의 중이다”라는 입장이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양적 감축이 아니라 질적 선별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쟁력있는 설비를 남기고 비효율 설비를 정리해야 하지만, 각 기업이 자사 설비의 경쟁력을 주장하면서 합의가 어려워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무조건적인 감산과 설비 축소는 과거 요소 공장을 정리한 뒤 중국 수입 의존도가 높아졌던 과오를 반복할 수 있다”며 “석화 구조조정은 총량이 아니라 경쟁력 중심의 선별 재편이 핵심인 만큼, 기업 간 이해관계에 맡기기보다 정부가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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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상황 장기화로 나프타 수급 차질로 인해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생산 시설 가동 중단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3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소재 기업 등에 따르면 LG화학 여수공장은 이날부터 여수산단 내 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여수산단내 NCC 2공장 모습. 뉴스1

여기에 중동 리스크까지 겹치며 논의는 더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원유·나프타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구조조정보다 당장 생산 유지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가 구조조정의 기준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급과 원가 압박이 동시에 커지면서 어떤 설비와 기업이 취약한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며 “결국 시장이 먼저 정리의 방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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