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트럼프 시대의 ET 이야기 [송원섭의 와칭]
-
3회 연결
본문

외계존재와의 교감을 표현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한 장면. [사진 소니 픽쳐스]
이티(E.T)를 기억하시나요. 스티븐 스필버그가 1982년 영화 ‘E.T’를 내놓은 뒤로 수십년, 목 길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외계인 이티는 수많은 지구 어린이들의 친구이자, 인류와 외계의 공존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를 지켰습니다.
무려 44년의 세월이 흘러 2026년,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인기는 그야말로 이티의 귀환이라 부를만 합니다. 앤디 위어의 원작 소설은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지만, 글로만 묘사되었던 외계인 로키가 실제 모습을 갖추고 등장한 것이 관객들에겐 완전히 새로운 충격입니다. 일단,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줄거리.
천재지만 약간 사회성이 부족한 생물학자 그레이스 박사(라이언 고슬링)는 다소 급진적인 학설을 제기했다가 주류 학계의 미움을 사고 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스트라트(산드라 휠러)가 이끄는 UN 산하 특별 조직에 끌려간(?) 그레이스 박사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생물 때문에 태양의 온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이 온도 저하를 막지 못하면 지구의 식량 생산이 파탄에 이르러 30년 내로 지구 인류의 1/3이 사망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레이스 박사는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우주로 파견되고, 수년간의 우주 비행 끝에 예기치 못한 존재와 만나게 됩니다. 절대 사람의 형상은 아닌 독특한 외계 생명체인데, 그레이스 박사는 이 이상한 생물에게 ‘로키’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그레이스 박사와 로키의 우주 우정과 협력을 그려가는데, 그 내용이 온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흥행 대박에 이어 로키 인형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고, 영화 속 로키가 쓰는 “Amaze! Amaze! Amaze!(놀라워! 놀라워! 놀라워!)”는 세계적인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산드라휠러가 부르는 해리 스타일스의 히트곡 ‘Sign of the times’는 물론이고 오아시스의 ‘Champagne Supernova’, 비틀스의 ‘Two of Us’ 같은 흘러간 노래들까지 새로 주목받고 있죠.
이 영화를 보고 왕년의 ‘E.T’를 떠올리는 것은 저만은 아닌 듯 합니다만, 이티와 로키를 비교해 보면 '따뜻한 교감'외에는 많은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E.T'의 '손가락 교감' 장면과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손 터치 장면. 외계 존재와의 교감이란 부분에서 두 영화는 꽤 닮아 있다. [사진 소니 픽쳐스]
(주의사항: 특별히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부분은 없지만, 감상 전에 선입견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싶은 분은 여기서 그만 읽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번 리뷰는 영화를 안 보고도 본 척하실 분들께 꽤 도움이 될 겁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로키는 이티에 비해 훨씬 소통과 이해가 어려운 대상입니다. 최소한 이티는 인간과 비슷한 눈으로 사물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고, 초콜릿을 좋아하는 미각도 갖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두 팔과 두 다리를 썼고, 지구의 대기와 중력에서 살 수 있었고, 어설프게 영어 단어를 발음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키는 얼굴이란 것이 아예 없고 몸은 광물질인 데다 암모니아를 호흡합니다. 그밖에 중력, 영양소, 체온 등 생존의 환경이 인류와는 전혀 다르죠. 한마디로 생명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인류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인류 문명의 가장 큰 원동력을 인간의 공감(empathy) 능력에서 찾곤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역지사지를 통해 서로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말하죠. 따라서 공감이란 대개 상대와 나의 공통점에서 출발합니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더욱 결속이 굳어지게 하는 힘인 동시에, ‘나와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기 시작하면 아예 적이 되게 만들기도 합니다.

장대익 저, '공감의 반경'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놀라운 점은, 외계인 로키를 이렇게 인간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는 존재로 설정하고도 두 생명체가 서로 협력해 가며 목표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공감의 반경’의 저자 장대익 교수(가천대 창업대학장)는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의 차이’로 이를 설명합니다.
만나는 순간 같은 사투리, 비슷한 외모, 공동의 추억 등 서로의 공통점에 끌려서 발휘되는 정서적 공감이 있는 반면, 서로의 위치와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이성적인 교류에서 발현되는 인지적 공감도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은 이티의 외모에 잠시 놀랐다가 곧바로 동정에 가까운 교감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성인인 그레이스 박사와 로키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공동의 목표’가 필수적입니다. 둘은 각각 자기 행성의 존망이 걸린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중요한 목표를 공유하고 있죠.
이 목표 때문에 두 존재는 한 마음으로 협력을 도모합니다. 마침 생물학자인 그레이스 박사와 엔지니어인 로키는 서로 보완하기에 딱 좋은 상황. 협력의 필요성을 느끼니 가장 큰 장애인 언어 장벽도 크게 어렵지 않게 극복해 나가고, 그러다 보니 서로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도 빨라집니다. 물론 ‘공감의 반경’에 나오듯 서로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있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앤디 위어의 원작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 위어는 영화 '마션'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수많은 창작자는 외계인, 유령, 뱀파이어에서 AI, 로봇까지 수많은 인간 아닌 존재와 인간이 만나는 상황을 이야기로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창작물들의 의도는 선명합니다. 작가들은 ‘그들의 시각’을 빌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서술해 보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원작 저자인 앤디 위어는 외계인 로키를 통해 인간의 ‘공감과 협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도 꽤 긴 편(156분)이지만 영상화를 위해 원작 소설의 상당 부분은 생략됐습니다. 삭제된 부분은 그레이스 박사가 우주로 출발하기 전까지 지구의 과학자, 엔지니어, 군인 등등이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하는 내용입니다. 즉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절반 정도는 ‘인간들끼리의 협력과 이해’,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외계인과의 협력과 이해’를 그리고 있죠.
결국 위어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돌멩이같이 생긴 외계 생물과도 협력할 수 있는데, 정작 지구에선 같은 인류끼리 이게 뭡니까’라는, 점잖은 한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소설 내용을 보면 원작자 위어는 인류의 미래를 그리 낙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스트라트가 그렇게 악착같이 태양 온도 저하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강대국 중심의 질서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농업이 붕괴하고 식량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하면, 인류 사회는 양심이고 도덕이고 다 팽개치고 한순간에 약육강식의 생지옥이 될 게 뻔하다는 것이죠. 이것이 스트라트가 무리수를 두어 가며 서둘러 그레이스를 우주로 보내는 이유입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한 장면. [사진 소니 픽쳐스]
그렇게 ‘프로젝트 헤일메리’ 속 그레이스 박사와 로키의 속 깊은 우정에 한껏 감동한 채 극장 밖을 나서면, 회색 미세먼지보다 더 답답하게 우리의 눈 앞에 드리워진 것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전쟁 뉴스와 ‘각자도생’이란 끔찍한 논리입니다. 문득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 로봇의 눈을 빌렸던 제임스 캐머런의 걸작 ‘터미네이터2’(1991)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릅니다.
"알 수 없는 미래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희망을 품고 그 미래를 마주한다. 기계인 터미네이터조차 인간 생명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면, 우리 인간도 분명 그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이런 낙관, 위선이라 불리더라도 휴머니즘이라는 명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던 시절은 이제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거라는 아쉬움. 어딘가에 우리의 친구 로키가 살고 있을 먼 하늘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