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日·佛 호르무즈 통과, 韓 26척은 그대로…정부 “개별 협상 없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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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오만 무스카트 해안에 유조선들이 정박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제한된 가운데 최근 프랑스와 일본 관련 선박들이 잇따라 해협을 통과하며 한국 선박 26척이 여전히 대기 중인 상황과 대비되고 있다. 정부는 선박 통항 관련 개별 협상을 지양하고 다자 공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비용 손실을 우려하는 해운업계와는 온도 차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정부와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국 해운사가 운영하는 선박 26척은 여전히 호르무즈 인근 해역에서 대기 중이다. 반면 주변국 선박들은 잇따라 우회로를 찾으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지난 3일 프랑스 선사 소유의 몰타 선적 컨테이너선 ‘CMA CGM 크리비’호가 이란 측의 ‘안전 통로’를 이용해 걸프 해역을 빠져나왔고, 일본 미쓰이(MOL) 관련 선박인 파나마 선적 ‘소하르 LNG’호(3일)와 인도 선적 ‘그린산비’호(4일)도 차례로 해협을 통과했다.

이처럼 엇갈린 결과를 두고 일각에선 ‘국가 간 교섭력의 차이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정부는 선을 긋고 있다. 일본이나 프랑스 정부가 전면에 나서 이란과 별도 협상을 벌인 결과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4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계자 역시 지난 3일 해협을 빠져나온 ‘소하르 LNG’ 호에 대해 “목적지가 일본이 아니며, 일본 정부는 통과를 위한 협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통과한 일본 관련 선박들은 서류상 국적이 파나마나 인도일 뿐 아니라, 실소유주도 오만과의 합작회사이거나 인도 현지 자회사 구조”라며 “일본이 개입해 통항이 이뤄진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의 막후 외교전이 작동했다기보다는 이란과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인 오만·인도 등 해당 선박과 얽힌 제3국 정부의 외교적 영향력이나 민간의 이해관계가 직간접적으로 작용한 결과에 가깝다는 취지다. 프랑스 선박 역시 자국 정부의 개입 없이 민간 선사가 자체적으로 이란의 통항 규정을 수용해 빠져나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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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조현 외교부 장관,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중동 사태 장기화 우려에도 한국 선박 통항과 관련해 이란과 ‘원포인트’ 개별 교섭에 나서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나쁜 선례’에 대한 부담이 깔려 있다. 안갯속 전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이 다국적 연대를 이탈해 1대 1 협상에 나설 경우 이란이 이를 빌미로 막대한 통행료를 요구하거나 자국 입장에 대한 지지 선언 등 조건을 내걸며 한국을 지렛대 삼으려 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당장의 급한 불을 끄려다 결국 이란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단 것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 35개국이 이란과의 개별 협상을 지양하고 ‘항행의 자유’라는 공동 대오를 굳건히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와 관련, 지난달 31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도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문제가 거론됐다. 이 자리에서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현재 군사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이란이 통행료를 부과하고 징수할 만한 행정적·물리적 역량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고, 국제사회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의 요구에 끌려다니며 섣불리 개별 협상에 나설 실익이 없다는 정부 내 기류가 드러난 대목이다.

정부 당국은 현재 대기 중인 우리 선박 26척과 관련해 “당장 무조건 빠져나와야 할 긴급 수요는 없는 상황으로 파악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바다 위에 배가 정박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 손실이 누적되는 해운업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할증된 보험료와 선원 위험수당 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선박 한 척당 하루 최대 1억 4000만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26척 중 10척을 차지하는 중소 선사들은 사태 장기화 시 줄도산 가능성도 거론된다. 결과적으로 이란과 우호적인 제3국 합작 지분 등 우회로를 활용한 일부 외국 선사들과 달리, 순수 국내 자본 위주인 한국 선박들은 정부의 다국적 공조 기조 속에서 선택지가 좁아진 상황이다.

한국해운협회는 지난달 27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중소 선사는 선박 한 척의 운항 차질만으로도 회사에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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