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초등생도 거식·폭식으로 고통…수치심 이해하고 견뎌내야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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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베스트 닥터 김준기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식이장애·트라우마 치료 전문가
31년간 1만 건 넘는 임상경험 쌓아

강박 성향으로 치료 거부감 심해
‘난 안돼’ 생각 말고 가족도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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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원장은 “식이장애를 극복하려면 몸의 리듬을 되찾는 노력과 내면의 수치심을 이해하는 과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주 객원기자

“통통에서 뼈마름 되는 법” “오늘도 씹뱉(씹고 뱉는 행위) 인증” “뼈툭튀(뼈가 툭 튀어나옴) 체크”.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일부 젊은 층에서 극단적으로 마른 체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자리 잡으면서 공유되기 시작한 표현들이다.

체중과 체형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이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이어지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정상적인 식사 습관이 무너진다. 그 결과 ▶심각한 저체중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성 거식증 ▶정상 체중을 유지하면서도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신경성 폭식증 ▶과체중·비만을 동반하면서 조절되지 않는 폭식을 반복하는 폭식장애 같은 ‘식이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준기 원장은 국내를 대표하는 식이장애·트라우마 전문가다. 식이장애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5년, 그 심각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식이장애 클리닉을 열었다. 서울 서초동 진료실에서 그를 만났다.

식이장애 환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식이장애는 오늘날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질환이다. 전 세계 식이장애 유병률은 평균 2.8%로 추정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 지역이 약 3.5%로 더 높다. 이는 100명 중 3~4명은 식이장애를 겪고 있거나 과거에 겪었다는 뜻이다. 전체 환자의 80% 이상이 여성이며, 10·20대가 약 60%를 차지한다.”
최근 주목할 만한 경향이 있나.
“발병 나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예전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서 많이 발병했으나 최근엔 10세 전후의 초등학생 환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질병이 아닌 취향·문화로 보는 이도 있다.
“식이장애가 오면 신체 손상은 물론, 정서적 고통과 사회적 기능 저하가 함께 나타난다. 단순한 다이어트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정신의학적 질환이다. 특히 식이장애 치료는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롭고, 오랜 시간 꾸준한 개입과 조율이 필요한 영역으로 꼽힌다.”

한 예로 여대생 A씨(23)는 심한 체중 감소와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14㎏을 감량한 그의 체질량지수(BMI)는 13.2㎏/㎡(저체중 기준 18.5 미만). 입원 후 첫 식사 때 영양사가 계산한 적정 칼로리의 음식이 담긴 식판을 받았다. 그는 밥알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가 뱉기를 반복했고, 된장국 한 숟가락을 먹는 데만 5분이 걸렸다. 머릿속으로 ‘밥 한 공기면 적어도 200㎉, 된장국엔 기름기가 있으니까 50㎉는 더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간신히 식사를 마쳤지만, 병실로 돌아온 그는 바로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살피며 ‘살이 붙었다’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식이장애 환자가 흔히 겪는 치료 과정이다. 이처럼 치료할 땐 예외 없이 저항이 따른다.

왜 이렇게 치료가 어려운가.
“우선 식이장애 환자는 자신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편이다. 또 환자는 체중 증가에 대해 극단적인 두려움을 갖는다. 가족의 이해 부족도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대부분 기질상 정서가 민감하고 불안정한 데다 과도한 완벽주의 혹은 강박 성향을 띤다. 치료를 받더라도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좌절을 많이 겪는다.”

김 원장은 30년 넘는 기간 동안 1만 건 이상의 임상 경험을 쌓았다. 치료 현장에서 깨달은 건 거식과 폭식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증상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땐 이면에 있는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는 “증상 이면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감정이 바로 수치심”이라며 “수치심은 사람을 끊임없이 자기 비난으로 몰아넣고 자신을 통제하려는 강박적인 행동을 유발한다”고 했다.

‘나는 무가치하다’ 같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독성 수치심은 몸과 마음을 경직시키고 삶 전체를 불안과 긴장 속에 몰아넣는다. 결국 독성 수치심이 주는 고통을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다이어트에 집착하거나 폭식·거식을 반복하는 사례가 상당수다.

회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무너진 식사 패턴을 바로잡고,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몸의 리듬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삶을 어떻게 조형하고 왜곡하는지 이해하는 일 역시 회복의 중요한 기점이 된다. 물론 수치심을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직면하려는 시도가 회복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결국 회복은 몸의 리듬을 바로 세우는 노력과 내면의 수치심을 이해하고 견뎌내는 과정이 함께 갈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주변에서 도와줄 건 없을까.
“부모의 정서적 지지를 받으며 치료를 받는 식이장애 청소년은 치료 중단율이 낮고 회복도 더 빠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성인이라면 배우자나 신뢰하는 친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환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부터 시도해 보라고 말해준다. 식사 행동을 조금씩 바로잡고, ‘나는 안 된다’ ‘나는 부족하다’는 식의 생각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반응해 보는 연습을 하라고 조언한다. 회복이란 모든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수치심으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이 남아 있어도 그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키워가는 과정에 가깝다.”
인식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 식이장애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아이 마음에 세심하게 귀 기울일 때 가장 강력한 회복 자원이 된다. 부모·가족의 이해를 돕고자 최근 『식이장애에 대한 모든 것』이란 책도 출간했다. 식이장애는 포기하지 않으면 서서히 낫는 병이다. 또 일찍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하면 만성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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