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5년 전 정의용도 “이란 X들”…정부 ‘1대1 협상’ 꺼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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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류에서 풀려난 한국케미호가 2021년 4월 9일 오전(한국시간) 출항하는 모습.연합뉴스

호르무즈해협에 고립된 한국 선박 26척을 위한 이란과의 ‘개별 협상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정부는 다국적 공조를 앞세우며 이란과의 1대1 협상에는 선을 긋고 있다. 입장이 비슷한 국가들과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인데, 외교가에선 2021년 한국케미호 나포 당시 겪은 이란의 막가파식 교섭 전술에 대한 ‘학습효과’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1월 5일 에탄올 등 화학물질을 수송 중이던 국적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명분은 해양 환경 오염이었다. 히지만 본질은 한국 내 동결된 70억 달러 규모의 원유 수출 대금을 노린 ‘정치적 인질극’이었단 게 당시 협상에 정통한 복수 소식통의 평가다.

당시 협상 테이블 안팎에선 외교적 관례 수준이 아니라 상식을 넘어서는 이란 측의 행동이 잇따랐다고 한다. 피 말리는 교섭을 거쳐 한국케미호 석방을 하루 앞둔 2021년 4월 8일 자정 무렵, 이란 측이 텔레그램을 통해 불쑥 한국 정부 측에 들이민 억류 비용 청구서는 지금도 외교부 안팎에서 회자된다. 배를 억류한 약 3개월간 발생한 선박 수리비와 선원 식비, 생필품비 등을 일괄 청구해 온 것이다.

상세 내역은 예측 밖이었다. 선원들이 나포 중에 사용했던 500원짜리 쓰레기봉투 값을 5만원으로 100배가량 부풀려 청구한 뒤 우리 측이 강력히 항의하자 “그럼  깎아주겠다”며 가격을 낮추는 식이었다. 국가 간 공식 외교 교섭이 흡사 흥정판으로 전락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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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021년 9월 13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호주 외교?국방장관 2 2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당시 교섭에 나섰던 외교 라인은 이란의 고압적인 태도로도 곤욕을 겪었다. 이란은 상대국 고위급 인사가 방문하면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당국자를 ‘욕받이’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도 이를 피하지 못했다.

당시 선박 억류 해제가 합의 직후에도 몽니는 이어졌다고 한다. 억류 해제 발표 직후 이란 현지를 찾은 당시 정세균 총리를 비롯한 우리 정부 사절단을 향해 이란 외무부는 “왜 선박 석방 보도자료에 ‘이란 정부에 사의를 표한다’는 문구를 넣지 않았느냐”는 억지를 썼다는 것이다. 이런 텃세에 협상 내내 시달렸던 탓에 평소 정제된 외교적 언어를 강조했던 정의용 당시 외교부 장관마저 사석에서 “이란 놈들”이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라고 한다.

비공개 협의 직후 사실을 왜곡해 발표해 협상판을 흔드는 이란 정부 특유의 언론플레이도 이어졌다. 그해 2월 22일,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유정현 주이란 대사와의 면담 직후 관영 매체를 동원해 “한국과 동결자금 무제한 사용에 합의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한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이는 미국의 강력한 대이란 제재 탓에 미 재무부의 특별 승인 없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사안인데,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기정사실화해 한·미 간 갈라치기를 시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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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2021년 4월 1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을 방문해 에샤크 자한기리 수석 부통령과 회담을 갖고 있다. 뉴스1

당시 나포는 최종건 당시 외교부 1차관의 이란 방문을 불과 엿새 앞두고 전격적으로 감행됐다.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 예정돼 있는데 해당 국가 선박을 나포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 건 표면적 외교 채널인 외무부와 실제 나포를 주도한 군부(IRGC)가 각기 움직이는 구조 때문이다. IRGC는 최고지도자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조직으로, 실제 한국케미호 석방 직후인 그해 4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당시 이란 외무장관이 “외무부는 권한이 없고 IRGC가 모든 외교를 주도한다”고 토로한 비공개 녹취록이 유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현재 호르무즈해협의 실권 역시 IRGC가 쥐고 있는 구조다.

결국 정부가 26척의 선박 고립 상황에도 한국 선박 통행을 위한 양자 교섭에 나서는 데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런 과거 경험칙과 무관치 않단 말이 나온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틈을 보였다가는 통행료 지불이나 억지 지지 선언 같은 ‘개별 청구서’의 굴레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사회 역시 이란의 부당한 요구에 선을 긋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 2일 영국 주도로 열린 40여 개국 외교장관 화상회의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납부를 국제사회가 단합해 막고, 조율된 대응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6일 “통행료 지불과 대이란 제재에 대해 공동 대응하자는 내용이 결과문서에 담겼다”며 정부의 다각적 공조 방침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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