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같이 죽고 싶더라”…그래도 번개탄 공장 문 못 닫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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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에 있는 번개탄 생산 업체 ㈜지앤씨. 전국 남은 번개탄 공장 두 곳 중 한 곳이다. 한찬우 기자

충북 제천에서 번개탄(성형숯) 생산 공장 ㈜지앤씨를 17년째 운영 중인 김현응(58)씨는 지난 2일 “우리가 만든 번개탄이 자살에 활용됐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회사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했다. 김 대표는 “번개탄이 과거엔 캠핑용 숯불, 난방용 연탄의 불쏘시개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죽음의 불쏘시개로만 인식되고 있다”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부를 믿고, 관련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12월 24일 국무조정실 산하에 ‘범정부 생명지킴추진본부(추진본부)’를 만들었다. 추진본부는 우선 자살의 주요 수단이 된 번개탄의 악용을 막기 위한 개선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추진본부는 지난 2월 20일 충북 제천에 있는 김 대표의 업체를 직접 방문했다. 송민섭 본부장은 김 대표와 일산화탄소 중독 자살 현황을 공유하고, 번개탄의 자살 수단 악용을 막기 위한 방안도 함께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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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생명존중 및 자살예방을 위한 범정부 생명지킴추진본부-유통업계와 업무협약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진본부에 따르면 자살자 4명 중 1명이 번개탄 등 가스 중독으로 생을 마감한다. 추진본부는 이날 김 대표에게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사람은 2024년에만 3525명으로 최근 2년 동안 2.2배가 늘어난 수치”라며 “같은 해 전체 자살자 1만4872명의 24%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8일에도 울산 울주군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현장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추진본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된 지난 2일 공장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이러한 통계와 사례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번개탄 생산 공장은 김 대표의 회사를 포함해 전국에서 단 두 곳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자살자의 일정 부분은 우리 제품을 쓴 것이 아니겠냐”며 “특히 젊은 사람들이나 일가족의 비극에 우리 제품이 쓰인다는 건 정말 뼈아픈 고통”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인(知人)이 우리 제품을 쓰고 세상을 등진 적도 있었는데, 정말 나도 같이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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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보일러가 주된 난방시설인 시절, 서울 관악구 주민이 연탄을 나르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은 없음.

번개탄은 1970~1980년대만 해도 연탄과 짝을 이루며 서민들의 밥 한 끼와 뜨끈한 아랫목을 책임지던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도시가스·기름보일러가 대중화되며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는 “십수 년 전만 해도 전국에 약 100개의 공장이 있었다”며 “우리 공장의 수익도 산업의 쇠퇴와 함께 17년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하루에 십여만장의 번개탄을 찍어내던 지앤씨의 생산량은 약 2만장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공장을 멈추지 않고 가동하는 이유는 여전히 번개탄을 필요로 하는 곳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사회 밑바닥 어디에선 번개탄이 꼭 필요한 물건”이라며 “특히 연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쪽방촌에서 연탄·번개탄은 유일한 난방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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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에 있는 번개탄 생산 업체 ㈜지앤씨. 김현응 대표가 직접 번개탄에 불을 붙이며 설명했다. 한찬우 기자

김 대표의 목표는 “번개탄이 사라지기 전까지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것”이다. 실제 김 대표는 수천만원가량의 사비를 들여 번개탄 포장지에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안내 문구를 인쇄해오고 있다. 최근 국무조정실이 생명사랑 스티커를 직접 제작하고 배포하기로 했지만, 김 대표는 10년 전부터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추진본부는 유통 업계에도 번개탄 충동구매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번개탄을 매대에 진열하지 않고, 구매 요청이 있을 때만 꺼내 판매하는 ‘비진열 판매’ 방식이 그중 하나다. 김 대표는 “이러한 유통 제한 방식은 결국 생산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무거운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며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김 대표는 “악용 가능성이 없는 다른 제품으로 대체될 수 있다면, 번개탄 생산 자체를 줄여나가기 위한 정책도 정부가 고려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실제 추진본부 관계자도 “논의 과정에서 김 대표가 ‘사업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수차례 토로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장 한쪽에서 활활 타오르는 번개탄을 보여주며 “조만간 사라질 번개탄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따뜻한 도구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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