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기부 간첩 조작 피해자 故박기홍 재심서 무죄…“늦은 정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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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부산고법 건물 앞 깃발. 연합뉴스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의 간첩 조작 사건으로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던 고(故)박기홍 씨가 45년만에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부산지법 형사4부(정성호 부장판사)는 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년간 구금됐던 박씨의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당시 수사 자료와 내용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에 대한 일부 증거들은 증거 관계가 없고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박씨는 1978년부터 3년간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이웃 주민에게 한 혐의로 1981년 1월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안기부로 끌려간 박씨는 수사를 받았고, 그해 6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983년 출소한 박씨는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를 사실상 끊고 혼자 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외롭게 지내다 1992년 1월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유가족에 따르면 박씨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일본 유학 후 한국에서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가내수공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일본어에 유창하고, 아는 게 많아 일본 방송을 보고 “북한에 가면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더라, 북한 가면 좋다더라”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한 게 화근이었다.

박씨의 며느리 김모(77)씨는 “당시 간첩 신고를 하면 포상금 제도가 있었는데 이웃 주민들이 (박씨를) 신고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아버님은 출소 이후 간첩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없는 사람처럼 지내셨다”며 “평소 말씀하시는 것을 좋아했는데 말할 사람이 없으니 삶의 의욕을 잃고 일찍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늦게나마 정의 실현돼 다행…국가배상 소송 진행할 것”

박씨처럼 간첩으로 내몰렸다가 무죄 판결을 받는 사례가 잇따르자 박씨의 친손녀가 2023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2024년 6월 강압 수사와 인권 침해 가능성을 인정해 재심을 권고했다.

이후 2025년 8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재심이 결정됐고, 그해 11월 4일 첫 공판이 진행됐다. 첫 공판에서 검찰은 “증거를 확보 중이다”며 구형 선고를 미뤘다. 검찰 내부 논의를 거친 후 지난 3월 중순 박씨 변호인에게 서면으로 ‘무죄’ 구형을 알려왔다.

유가족들은 무죄 선고 직후 “억울함을 풀어 다행이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시아버님이 간첩으로 내몰린 후 ‘없는 사람’으로 살아오셨다”며 “억울한 심정으로 돌아가셨을텐데 늦게라도 풀어드려 다행이다”고 말했다.

박씨의 재심 소송을 대리한 박민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박씨의 발언이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 고무죄에 해당하는지 분명하지 않은 데다가 경찰의 가혹 행위 하에 진술이 이뤄졌다”며 “늦게나마 정의가 실현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측에서 상고를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배상과 형사보상 소송 등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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