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죽다 살아난 천재의 ‘휠체어 연주’…“음악으로 완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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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임현재가 6일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다리를 다친 이후 그의 무대 의상은 앉아서 연주하기 편한 점프수트로 변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신파는 싫은데….”
휠체어에 앉은 바이올리니스트 임현재(28)가 자신의 장애를 설명하다 멋쩍은 듯 이렇게 말했다. 풀업(턱걸이) 50개 등 하루 1~2시간씩 이어지는 재활 운동, 앞으로 쏠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꼿꼿이 버티며 바이올린을 켜는 연습법 같은 ‘특별한’ 일상을 얘기하면서도, 그는 “남들과 다를 건 없다”며 씩씩하게 웃었다.
오는 8월 21일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이끄는 서울시향과 협연을 앞둔 임현재를 지난 6일 중앙일보 상암사옥에서 만났다. 2012년 커티스 음악원 입학, 2018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3위에 입상했던 기대주 임현재는 2020년 5월 충북 진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한 후 4년 간 바이올린을 잡지 못했다. 1년 6개월 간 입원, 6번의 수술을 받으며 죽다 살아났고, 휠체어를 타게 됐다.
한동안 세상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던 그가 다시 무대에 오른 건 2024년 KBS한전음악콩쿠르에서였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며 지인들 소개로 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어요. 자연스레 연주 시범을 보이며 다시 악기를 잡았죠. 그런데 생각보다 잘 켜지는 거예요. 사실 착각이었지만….(웃음)”
그렇게 갑작스레 준비해 도전한 한전음악콩쿠르에선 예선 탈락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경연이었던 윤이상 콩쿠르 때는 하루 8~10시간씩 넉 달을 연습해 준결선까지 진출했다.
앉은 채 바이올린을 켜는 건 생각보다 많은 훈련을 필요로 했다. 가장 주력한 건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 하체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앞뒤로 몸을 흔들다간 균형이 무너져 앞으로 쏠리거나 다칠 수 있다. 활도 온전히 쓰지 못한다. 길게 팔을 뻗으면 휠체어에 활이 걸릴 수도 있어서다. 변함없이 남은 건 악보와 악보에 그려진 음표뿐이었다.
“그래서 연주할 때의 표정, 몸짓 같은 장식을 걷어내고 이 음악의 본질, 음표 존재의 이유에 대해 전보다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분석이나 해석에 좀 더 공을 들이고 있죠.”
임현재의 스승이었던 과르네리 콰르텟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놀드 스타인하르트는 자신의 블로그에 임현재에 대한 글을 올려 “학생 시절 부족했던 깊은 사색과 섬세한 뉘앙스가 지금 그의 음악 속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점차 올라온 연주력은 지난해 12월 임현재에게 서울국제콩쿠르 우승을 안겨줬다. 곧장 치러진 지난 1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엘마 올리베이라 국제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올해도 임현재의 강행군은 계속된다. 지난 4일 부산에서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 초청 콘서트 무대에 올랐고 이달 말엔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돌아가 학업을 이어간다. 6월엔 미국 최대 음악 축제 라비니아 페스티벌, 7월엔 대관령음악제에 연주자로 참석한다. 8월엔 올해 가장 큰 무대가 될 서울시향과의 협연이 예정돼있다.
임현재가 지난해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는 장면. [사진 임현재]
“지난해 엘마 콩쿠르 경연이 한창일 무렵에 시향 측에서 메일로 연락이 왔어요. 너무 좋은 기회라 바로 수락했죠. 곡목은 멘델스존 협주곡(Op.64)이에요. 너무 유명한 곡이다보니 부담은 있습니다. 제 나름의 언어로 해석한 멘델스존을 들려드리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왔던 임현재는 “이제야 음악이 내 일부였고, 음악이 있어야 내가 완벽해진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다치기 전엔 그저 음악은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이젠 바이올린이 있는 삶이 훨씬 활기차고, 나라는 사람이 완전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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