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부산공동어시장 ‘손가락 경매’ 사라지나…전자 경매 도입 추진

본문

bt2afcb57226a368fde5f81589f3bf7d2e.jpg

지난 9일 오전 6시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경매사와 속기원이 중도매인의 손가락 표시를 보며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에헤에~~심마치치야(10만7000원) 심마파치야(10만8000원) 십일마워(11만원)! 11만원에 53번”

경매사가 번호 ‘53’을 외치자 옆에 있던 속기원이 속기장에 “53번 중도매인 11만원 낙찰”이라고 썼다.

지난 9일 오전 6시. 부산공동어시장에는 경매사와 중도매인, 수산물 선별 작업자 등 500여명이 참여한 경매가 한창이었다. 바닥에는 고등어 1만 상자가 깔려 있었다. 1상자당 20㎏의 고등어가 담긴 것을 고려하면 200t에 달한다. 생선은 시간이 갈수록 값이 내려가기 때문에 경매는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수화 안내사가 “6구획 20상자 경매하겠다” 외치자 경매사가 판소리를 하듯 “에헤에”로 분위기를 띄웠다. 곧바로 중도매인들이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응찰가를 표시했다. 경매사가 음을 넣어 판소리하듯 가격을 읊조리자 또 다른 중도매인이 더 높은 가격을 손가락으로 표시했다. 최고가라고 판단한 경매사가 중도매인 머리에 쓴 모자 번호를 외치자 수화 안내사가 큰소리로 “53번 낙찰. 20개”라고 외쳤다. 운동회가 열리는 것처럼 경매장은 치열하면서도 흥이 넘쳤다.

bt592d4a2141f347f2d94c6d2526d3e84e.jpg

지난 9일 오전 6시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중도매인이 손가락으로 가격을 표시하자 경매사가 가격을 읊으며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2030년 전자경매 도입 추진…어종 따라 단계별 적용

1963년 부산공동어시장이 개장한 이래 60여년간 이어져 오는 수지 경매 방식이다. 하지만 2030년에는 이런 풍경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지난 3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함께 ‘디지털·유통혁신 협의체’를 구성하고 전자경매 도입과 유통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협의체에는 지자체, 학계, 수협 등 13명이 참가해 오는 12월까지 9차례 회의를 갖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수지 경매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김지웅 부경대 해양수산경영경제학부 교수는 “생선을 바닥에 깔아놓고 경매하고, 결과를 수기로 기록한 뒤 다시 전산으로 입력하는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보 공유에도 한계가 있다”며 “전자경매를 도입하면 경매 시간이 단축되고, 어획한 물량 정보의 디지털화로 유통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자경매를 모든 어종에 전면 적용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형선망인지 저인망어선인지에 따라 경매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등어를 주로 어획하는 대형선망은 수십 개의 상자를 한꺼번에 경매하지만, 고가 어종을 어획하는 저인망어선은 상자 1개씩 경매를 하고 있다.

또 대형선망은 어획 시기에 따라 고등어 크기 차이가 커서 전자 경매 도입 시 규격 표준화가 어렵고, 혼획되는 어획을 어떻게 분류할지 등 논의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래서 국내 수산물의 30%를 공급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산지 위판장 거래를 전자경매로 모두 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정필 KMI 신산업연구실장은 “업종별로 입장이 다른 만큼 전면 도입, 부분 도입, 병행 방식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협의체에서 논의할 것”이라며 “산지 위판장에 전자경매를 도입하는 것은 국내 전례가 없는 만큼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t2eff3d0fcc52e303496df742fdd02b11.jpg

지난 9일 오전 6시 부산공동어시장 바닥에 고등어 200만톤이 깔려 있다. 이은지 기자

“일본 도요스 시장처럼 경매 문화 남겨야”…전통 살리되 효율 강화

전자경매 도입을 위한 기술적 기반은 이미 마련됐다는 평가다. 물고기를 건드리지 않고 AI(인공지능)로 크기·무게를 측정하는 기술뿐 아니라 중도매인의 손가락 모양과 경매사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찍어서 전산으로 기록하는 기술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이 실장은 “전자경매 도입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 조정의 문제”라며 “현장에 있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어느 수준까지 전자경매를 도입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수산업 종사자는 “일자리가 사라질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는 “전자경매가 도입되더라도 경매사가 시스템 운영이나 현장 조율 역할을 맡는 등 기능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전통을 살리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도요스 시장은 일부러 새벽 경매를 해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일본 츠키지 어시장 또한 현대화 작업을 추진하면서도 도매상이 경매하는 모습을 남겨뒀다.

정연송 부산공동어시장 대표는 “경매는 단순한 거래 방식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적 자산”이라면서도 “디지털 전환을 통해 거래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면서도 어시장의 정체성은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데이터 기반 유통 체계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 정 대표는 “국내 수산업의 미래를 위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전자경매를 도입하고 가공·물류 디지털 시스템이 적용되면 부산공동어시장은 ‘스마트 수산물 유통 허브’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6,181 건 - 1 페이지